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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옥문화원에서는 '신한양유람新漢陽遊覽'이라는 과제로 오늘의 서울 각곳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문화유적들을 찾아다니며 탐구를 하고 있다. 벌써 재작년에 시작된 탐구인데 이 일의 첫걸음을 사직단社稷壇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간단한 제수를 마련하고 사직단에 가서 유문 밖에 자리 깔고 배례를 드리며 "어리석은 후손들이 어른들께서 남겨주신 자취를 찾아다니며 이룩하신 바를 찬탄하려 하오니 소례를 대례로 받아주시고 모르는 소치로 넘겨짚는다 해도 널리 굽어살피셔 일러주시옵기를 앙망하나이다"고 아뢰었다. 그리고 우리는 인왕산에 올라가 한양도성 축조를 시작한 자리에서 이 일에 동원되셨던 이름 없는 부역군들과 기술인력으로 참여하였던 분들에게 묵념을 올리며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유산을 보고다니지만 어느 분이 그 일에 참여하시었는지를 모르고 있으며 그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것이 보통이다.
우리들 선조들이 그 일에 참여하였을지도 모르면서 고마움을 모르는 건방진 후손들을 고깝게 여기실지 모른다. 더구나 어줍지 않은 건축물 서양식 본따서 짓느라 한양을 망치는 꼴을 당하면서 그 분들은 통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 분들의 울분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탐구는 아니다.
오히려 다니면서 자취를 보며 찬탄하고 그 분들 노고를 칭찬하면 한 층 가깝게 다가서게 되고 다가서니 숨결이 느껴지고 그러니 다정해져 가깝게 가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木壽는 전에 한양건설에 신명을 다한 태종 때의 감역관인 박자청朴子靑이란 어른의 업적을 탐구하고 <鄕土서울>이라는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하는 정기 간행물(제48호 1989년)에  <太宗朝 監役官 朴子靑攷>라는 작은 글을 써서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하천한 신분에서 일어나 공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는 높은 벼슬에 이르렀는데 이는 그의 신명을 다한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답이었고 그 이로 인하여 한양건설은 격을 높일 수 있었다.
우리의 한양유람의 탐구는 이런 분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작업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환희가 대단하다는 점에 우리 주최하는 이 들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들과 모여 앉아 덕담을 나누다 보면 조선조의 한양이 우리들 앞에 되살아나서 우리들을 즐겁게 해줄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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