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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팔각원당 시공현장을 견학하고(4)

여름은 지났다. 목수들은 뜨거운 여름하늘 아래에서도 쉬지 않고 재목을 다듬었다. 얌전하게 치목된 재목들은 목수들의 노고만큼이나 산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가 찾은 현장에서는 하루전에 입주식을 마친 상태였다. 立柱式은 목수들이 신고 끝에 치목을 마치고 처음으로 기둥을 세우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기둥 두 곳에 매달린 북어가 전래의 입주식 행사를 증거하고 있었고, 기둥머리에는 창방이 짜맞추어 연결되었다. 창방 안쪽 135°둔각을 반으로 가르는 귀한대도 결구되어 공포를 떠받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도편수 선생님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지난 시간에는 입사기초를 공부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세워진 기둥을 보고 있는데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 아래에는 어떤 장치가 들어 있을까요?"
"..............."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입사기초 위에는 강회다짐을 합니다. 강회는 석회석을 구워 만드는 것으로 물을 부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가루로 분해되는데 이를 강회를 피운다고 합니다. 강회 1에 물 3을 부어 분해를 유도하면 2.5~3의 분량으로 부피가 팽창하지요. 마사토는 가수분해된 강회 1, 황토 0.5, 석비레(편마암이 풍화되어 흙이 된 것) 0.5를 섞어 만듭니다. 강회다짐이란 마사토를 입사기초 위에 넣고 고르게 바르는 작업을 말합니다."

도편수께서는 느릿느릿 설명을 하며 곳곳에서 느닷없는 질문으로 우리를 궁지로 몰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격의를 없애고 있었다. 구박은 친근감의 표현이었다.
간간이 구박을 양념 삼아 설명이 이어지셨다.

"강회다짐 두께는 100-150mm정도가 적당합니다. 더 두꺼워지면 수축오차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지요. 적당한 두께라 해도 수축되는 만큼 고임돌로 고여 높이를 맞추어 주어야 해요.
강회다짐은 초석을 올려 놓을 정도의 강도로 굳는데 적어도 2주는 지나야 하는데, 콘크리트보다 천천히 굳어 공사를 더디게 하지만 그 견고함과 수명은 비할 바 없이 우수합니다. 강회다짐 위에 고임돌을 고이고 초석을 놓습니다. 고임돌 사이의 틈은 강회로 다시 메꾸어 주면 초석 놓기는 끝납니다."



팔각의 짜임새에대한 설명 중

초석 위에 드디어 기둥을 세우게 된다. 본격적인 건축물이 지상에 첫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이라 예부터 매우 중요한 공정으로 여겨 기둥 세우기에 앞서 입주식을 전래의 예법대로 치른다. 기둥 세우는 것도 그냥 갖다 세우는 것이 아니다. 도편수는 잔기침을 하며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기둥길이는 설계된 기둥높이에 덤길이가 보태져 있습니다. 정밀하게 보면 초석의 수평높이가 조금씩 다르고 게다가 초석 윗면도 얼마간 기울어져 있을 수 있어요. 기둥윗면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면서, 기둥의 완벽한 직립을 위해 기둥 아래 부분의 덤길이를 조정합니다. 여기에 옛부터 그랭이법이 동원되었습니다. 기둥을 직립시켜 초석면에 닫게 하면 초석의 가장 높은 부분과 접하게 되지요. 기둥하부와 초석면이 가장 많이 벌어진 만큼 그랭이 높이를 조정하고 초석면을 따라 기둥을 한바퀴 돌려 초석면 생김새와 똑같은 모양을 기둥하부에 그립니다. 이 선의 아래 부분을 따내고 기둥을 세우면 초석과 잘 맞물리면서 완전한 직립이 됩니다.
이렇게 세워 놓은 기둥은 어른의 힘으로 밀어도 않넘어져요."
그랭이질로 기둥을 세우는 이야기를 마치자 어느 절의 일주문이 수백년을 아무일 없이 버티고 있다는 등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수근대었다. 신기한 일이다.


창방, 귀한대 결구법 설명 중

기둥머리에는 창방이 연결되어 팔각원당의 기본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기둥높이로 가설한 비계 위에 올라 기둥머리를 살폈다. 창방과 귀한대의 결구모습이 선명하다. 그 위에는 주두를 놓아 공포를 얹을 준비를 하고, 창방 위에는 장혀를 앉혀 주심도리를 받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우리는 치목장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추녀가 치목을 마치고 얌전히 누워 있었다. 지붕에 걸어놓은 것만 보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니 실제크기가 정말 커다란데 놀랐다. 이것은 선자서까래나 기둥, 도리 등 모든 부재에서 마찬가지였다.
코 앞에서 보는 것과 지붕에 얹었을 때 몇몇 부재의 크기가 이렇게도 달라 보이는 걸 보면, 집을 모두 짓고 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더더욱 수많은 착시현상의 결과가 아닌가? 집의 비례가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것도 재목마다 놓일 자리에 놓였을 때 어떤 크기로 보일 것인지를 가늠하며 비례를 맞추어 다듬어 낸다는 것은 고급한 도편수의 안목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추녀 뒷뿌리는 왕대공에 연결하기 위해 주먹장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왕대공에는 추녀 뒷뿌리의 주먹장을 받을 홈이 패여 있었다. 추녀 뒷뿌리는 왕대공에 결속하고 곡이진 부분이 주심도리 위에 얹혀 팔각원당의 아름다운 추녀곡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간 나는 건축의 조형미 외에는 별관심이 없었다. 보이는 것만 보았다. 건축의 아래에서 건축을 떠받치는 한옥의 기초는 그 자체가 흙과 한 몸이 되어 천년을 버티고도 넉넉히 남아 제 주인이 수명을 다한 후에도 후세에 제 주인의 증거로 남는다는 말을 들으며, 어두운 곳에서 아무런 영광도 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존경을 느낀다.
오늘 나는 지하와 지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고 들었다. 다음 참관에서는 지상의 영광을 기대한다.

2003.10.5. /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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