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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팔각원당 시공현장을 견학하고(5)

오늘은 상량식이 있는 날이다. 11시에 있는 상량식에 맞추느라 버스는 인정을 두지 않고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이병환兄에게 만남의 광장까지 쫒아갈테니 기다려 달라는 급전이 왔다. 이병환兄은 가족들과 손을 이어 잡고 땀에 범벅이 되어 달려왔다. 일가족 탈북순간이 아마 저럴 것이다. 탈북가족(?)까지 태운 버스는 모처럼 만원이었다. 상량식은 역시 대단한 구경거리인 모양이다. 버스는 11시 10분쯤 현장에 도착하였다. 건축주인 대한대도연구회 측 인사들이 진을 치고 고사상에는 행복하게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난번 참관 때는 창방까지만 결구되어 있었다. 그동안 장혀와 주심도리, 주심위에 각종 공포부재들을 얹고, 외출목 도리를 앉혔다. 외출목도리는 주심도리보다 낮아 경사진 추녀를 알맞게 떠받치고 있었다.
이번 팔각원당은 전래에 없는 귀접이식 架構를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1번 귀접이 도리는 주심도리 허리를 반턱으로 따내어 주심도리와 같은 높이로 결구되어 있었고, 2번귀접이 도리는 1번 귀접이도리 허리 위에 얹혀 외출목도리-주심도리-2번 귀접이도리 순서대로 점차 높아져 추녀의 물매를 이루고 있었다. 팔각원당의 뼈대는 대체로 모양을 드러내었다. 추녀는 땅에 드러누워 있을 때 거대함과는 달리 끝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었고, 치켜올린 여덟개 추녀 뒷부리는 팔각 왕대공에 의해 결속되어 있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상량식이 시작되었다. 진행을 맡은 신영훈 원장님의 첫 마디 농담이 엄숙한 좌중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건축주의 발원문과 상량문 낭독에 이어 도편수의 시공경과와 시공에 활용된 법식 보고가 있었다.
"팔각원당을 짓기 위해 4만7천 여 재의 소나무가 현장에 실려왔고 이 중 1/3을 깎아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를 여기에 세웠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기법은 소생의 스승 조희환 대목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기문의 기법을 활용하였고 이 시대의 대 장인 신영훈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 여름 목수들은 치목과 재목관리에 여느 때와는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더위와 비와 태풍의 신고를 이겨낸 목수들이 아니었다면 오늘 상량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모든 성원과 땀방울이 어울려진 원당이 앞으로 천년동안 무탈하도록 살펴주십시요."
도편수 선생님은 자신의 공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가 아니었다면 새로운 창작품 팔각원당의 상량은 없었으리라는 것을... 누구도 해보지 않은 귀접이식 시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였겠는지 보지 않았어도 우리는 짐작한다.

상량대 가운데 홈에 발원문과 상량문 그리고 시공보고서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상량대는 후대에 이 집을 보수할 때 수 백년 전을 증거하는 타임캡슐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수 많은 타임캡슐을 갖고 있었다. 절집이면 절집, 탑이면 탑 모두에 수백년전 또는 천수백년 전 일들의 기록이 있지 않은가?

상량고사가 끝나자 추녀 꼭대기에 올라간 목수들은 서서히 상량대를 당겨 올렸다. 신부 집들이를 하는 함잡이처럼 상량대는 차마 한달음에 올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복전을 어지간히 넣은 후에야 상량대는 천정까지 올려져 왕대공 바로 밑에 설치되었다. 복전은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목수들의 잔치에 보탤 것이다.
이런 실속을 재미와 해학으로 연출하는 우리 풍습이 아름답다.


상량도리가 없는 구조의 건물이고 보니 상량할 부재가 마땅치 않아 고심하던 중 왕대공 바로 밑에 팔각으로 부재를 돌리고 팔각중 두 변을 가로지르는 부재 하나를 덧대어 그 아래에 상량하기로 했다. 이 또한 흔치 않은 발상이고 보면 전통의 법식에 오늘의 생각을 불어넣어 구현되는 원당에 의미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식후 성대한 잔치음식은 더 없이 맛이 있었다. 우리는 먹을 수 있는 최대 기록을 경신해 가며 배불리 먹었다. 장대처럼 키가 큰 류제형과 이헌진 조차 가로가 세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점심후 팔각원당 아래 모였지만 아랫마당에서 놀던 풍물패가 올라와 강의장은 풍물놀이 마당이 되었고 원장선생님과 도편수선생님도 흥에 겨워 함께 어울렸다.
그걸로 강의는 끝이었다. 올라오는 길은 막혔어도 버스 한 가득 상량식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학인들은 지루해 하지 않았다. 처음 본 상량식의 기억은 오래갈 것 같다.
2003.10.19. /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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