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박물관 한국실 개관이야기 1

by 신영훈 posted Nov 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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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6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런던으로 직행하였다. 7일의 런던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닌데도 거리는 이미 어두웠고 가로등이 빛나고 있었다. 해가 늦게 뜨고 그러면서도 저녁이면 아직 3시밖에 안되었는데도 해가 지는 고장이 내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니 옛적부터 실내에서 하는 예술의 행사가 많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한숨 눈을 부치고 한국실로 갔다. 낯익은 박물관원들과 만났다. 내일 8일 개관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박물관장과 동양부장들이 손수 나와 진열하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총력전인 셈이다.

진열장도 새로 맞추었다고 한다. 부러운 정도의 고급진열장이다. 조명시설도 완벽하다고 하며 문을 닫으면서 진공상태가 되어 유물을 원상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초현대적인 시설인 셈이다.

사랑방 지을 때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싹 가시고 이제 거의 완벽한 단계로 정리되어서 아늑한 맛이 놀랍다. 길가로 난 창에는 기존 유리창 안에 넉살무늬의 창을 하나 더 달았는데 도배는 하지 않았으나 진열실 전체바닥을 우물마루로 깐 시설과 함께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우리나라 박물관에도 이런 시설이 가능하려는지 모르겠다. 영국인들은 한옥의 개성을 존중하여 이런 시설을 하지만 서양 것이 좋아 보이는 안목에서는 이런 채택은 무리일지 모른다.

진열되어 있는 각 유품들은 생각보다 다양하였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선사시대 유물로부터 시작하여 영국박물관이 구입한 현대도예작품에 이르기까지 전역사시대의 작품이 다 모였다. 대담한 전시방법이다. 사랑방 뒤편 후미진 자리에는 사람 키만 한 큼직한 옹기 독이 둘 자리잡고 있다.. 잘생긴 독인데 기품이 당당하다.

진열장 사이로 한옥 사랑방이 보인다. 해맑은 소나무의 빛깔이 좀더 붉어져 있었다. 아직도 소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어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나무들이 좀 트고 있었다. 기후에 잘 조절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런던은 자주 비가 오는 고장이어서 대체로 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건조한가 보다. 나무들이 너무 속히 건조하는데서 오는 자작한 표면 구열(龜裂)이 눈에 뜨인다. 소나무의 특성이 발휘되고 있다. 걱정스러운 일은 아니나 눈에는 뜨인다.

사랑방 안에는 鄭良謨 전국립박물관장이 지휘하여 만든 가구들이 알맞게 놓여 있어서 아주 보기가 좋았다. 새로 맞추어 제작하였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되었다는 긍지이다.

나는 사랑방에 들어앉아 지난번에 미진하였던 부분을 다시 손질하였다. 도배는 런던박물관의 전문 표구사들이 동원되었는데 주로 문풍지 부분이 너덜거린다고 해서 다 잘라내어 말쑥하게 하였다. 문풍지의 정서가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실내 조명이 은은하여 매우 좋다. 뒷 창, 미닫이 창호지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처럼 간접조명한 방식도 좋았다. 실내에는 진열장에서와 같은 아주 작은 전등을 사용하였는데 빛이 집중되지 않아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안도감이 앞선다.

벽장문과 다락문의 돌쩌귀와 문고리도 박았다. 아랫목 벽이 완벽하게 조성되었다. 지난번에 완성하지 못하였던 쇠장석의 설치로 마감이 된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들과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간 박물관, 미술전문가들은 한옥 사랑채에 관심을 갖는다. 현지 교포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대사관에서의 모임에서도 화재는 사랑방에 집중되었다. 영국지식인들의 반향이 그렇게 화제를 이끌고 있었다.

드디어 날이 밝고 11월 8일 한국실 개관의 날이 되었다.

나는 새로 한옥문화원에서 마련해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천연염료로 물들인 쪽빛 마고자에 같은 색 두루마기를 입고 흰색 목도리를 슬쩍 두르는 방식으로 입었다. 한복을 지은 작가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박물관으로 가기 위하여 호텔로부터 걷는데 구경꾼들의 눈이 심상치 않고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미소 어린 얼굴로 눈인사를 한다. 한복이 좋아 보이나 보다. 아직 시간이 아니되어 입구에서 기다리는 관람객을 비집고 현관을 들어서니 수위들이 인사를 하며 길을 비켜준다. 역시 한복의 위력인 셈이다.

11시 30분부터 내외 신문기자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사랑방 앞에서 하였다. 다른 진열품 보다는 역시 한옥 사랑방이 중심이 된 것이다. 끝날 지음에 사랑방에 들어가 아랫목 보료에 앉았다. 시선이 집중된다. 쪽빛 두루마기와 한지와 가구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며, 사람이 들어앉으니 방안의 비례가 아주 잘 어울리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찬탄이다.

조이 수 백장의 사진을 찍혔을법하다.

韓英室이라고 如初선생이 쓴 편액으로 현판식을 거행한 이후로도 방안에 앉아 있는 일을 계속하였다. 밖에서는 "저 사람이 이 사랑채를 지은 건축가"라는 설명이 거듭되고 있다.

저녁 6시 박물관 관람이 끝난 시간에 본격적인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역시 사랑채 앞에서 중요 인사 10명이 테이프 커팅을 하였다.

내외 인사들이 많이도 모였다. 300명도 넘을 것이라 한다. 근래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여러 모임에 늘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리셉션은 한국실이 좁아 인도와 중국 동남아 미술품이 있는 2층 넓은 곳에서 진행되었는데 국립국악원 소속의 예인이 가야금을 연주하였다. 젊은 아가씨와 나이 든 고수의 장단이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갈채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 수가 자꾸 늘어난다. 나는 다시 불려 올라가 사랑방에 앉아 있어야 하였다. 여전한 찬탄의 눈길이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로서는 대성공인 셈이다. 수많은 카메라 후레시가 터지고 있다.

뒤늦게야 만찬장에 도착하였다. 만찬장은 그리스 神殿을 옮겨다 설치한 1층이었다. 그 넓은 진열실 안에 수 십대의 테이불을 배열하였는데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빼꼭하게 앉았다. 영국박물관 앤더슨관장의 인사말, 李仁浩 한국교류재단 이사장과 池健吉 국립박물관장의 연설이 있고 만찬을 계속되는데 어서 다시 올라오라는 전갈이 와서 또 사랑방 아랫목에 들어가 앉았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우리 교민들의 견해가 관심이었는데 그들도 한결같이 기쁨을 말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 둘이 만나러 왔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 한다. 국제협력기구에선가 일을 하는 분들이라 하는데 북한 말씨가 또렷한 장년의 인물이다. "참 좋은 세상 되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재주 있게 집을 지었시요----" 그들은 그렇게 칭찬하였다.

밤 11시나 되어서야 호텔에 돌아올 수 있었다. 완전히 파김치의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독한 감기를 앓고 있느라 열이 많은데 여러 낯선 사람들 만나느라 장시간 긴장하였더니 고만 지쳐버리고 말았다. 힘든 긴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매우 좋다. 한옥문화원의 첫 해외참여활동은 이렇게 해서 끝을 마감하였다. 애들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