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7화

by 신영훈 posted Jan 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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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미학

1.

명당이라 명당이라

이 터전 명당이라

아들 낳으면 효자 낳고

딸 낳으면 열녀 낳고

소 키우면 황소 되고

말 키우면 용마 되며

닭 키우면 봉황 되어

명당 터를 길복하네

내명당수 흘러들듯

부귀재록 그득하니

이 터전이 명당이라

명당이라 명당이라.


지관(地官, 相地師)이 관산(觀山)하여 봉심(奉審)하니 명당이 예 아니냐. 나랏님 궁궐 지을 터전만야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출장입상(出將入相)의 만인지상(萬人之上) 벼슬하여 복록 누릴 터전으론 족하지 않느냐.

살림집 자리로서는 으뜸중의 으뜸일세. 사풋한 뒷동산이 누에머리처럼 나북한데 좌우로 벌린 좌청룡 우백호가 득하고 파하여 득수(得水)하고 장풍(藏風)하는 중에 넓은 뜰이 개울 건너에 퍼졌으니, 동구밖에 채전 일구고 문전의 옥답을 갈아 오곡을 나우 심고 가을이면 추수하여 목목이 노적하고 알곡식 떨어내어 뒤주가 가득 차니 격양가가 드높구나.

넉넉히 먹을 만 하고 자손이 만당하여 부러울 것 없이 유족한 중에 장원급제한 큰아들이 유가(遊街)를 끝내고 사당에 들어 조상님께 고유(告由)하는 고나. 어절시구, 아이야 이만하면 내 족한 줄 알겠는가.

장가들고 시집가고 아들 낳고 딸을 보아, 슬하의 손자들이 만당에 그들먹 차있구나.

무럭무럭 자라는 중에 형제간에 우애 있고 친구에게 신의 있고 부부간에 화합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님께 충성하니, 들리느니 칭송이요 자자한 게 명성일세.

입향(入鄕)한 시조께서 적덕하신 여경(餘慶)이 이제사 꽃이 피네. 경사 나면 인사하고 어려우면 도와주고 힘들면 거들면서 굶으면 밥을 주고 과부에게 의복 주고 노인에게 공경하고 걸인 모아 잔치하고 이웃 절에 시주하며 서당에 훈장 모셔 아이들 가르치니 고을 사람들이 불망비를 세웠구나.

원님이 도임 하면 문안차 찾아오고, 감사님 지나는 길에 며칠씩 묵어가니 사랑 안팎에 넘치느니 인마 일세.

옛집이 좁아졌네. 새집 지어 보세. 풍년 들었으니 지신(地神)에 고사하고 모아 둔 체목 내어 집짓기 시작하세.

도목수를 불러라. 도목수 부르랍신다.

도목수 대령이오. 양수거지 아뢰온다.

헌헌장부 도목수가 든든하게 생겼고나.

생긴대로 집 지으면 투실해서 좋겠구나.

도목수 거동보소. 무명수건 질끈 매고

한 손에 먹통 들고 또 한 손에 자를 잡고

양판에 다가서서 먹칼로 짚어간다.

정지는 넓직하게 안방은 아늑하게

대청은 6간으로 건너방은 2간으로

앞퇴에 뒷퇴 두고 고미다락 개흘레를,

부엌 위에 다락 두고 방 뒤로 고방 두어

쓸모 있게 지어가니 안채가 되었고나.

부엌 뒤에 장독대요 장독 옆에 굴뚝일세.

뒤뜰에 나무 심고 나무 옆에 바위 놓아

신선이 노는 자리 후원이 완성됐네.

후원엔 별당 지어 신랑 신부 거처하고

저만큼 떨어져서 사당을 설립했네.

안채를 높이 짓고 안마당을 가꾸었다.

안마당 한쪽 편에 세 칸짜리 사랑 지어

자라나는 아이들 공부방 마련하고

작은사랑 앞쪽으로 큰사랑 다시 지어

들며 나는 손님들을 예의 있게 대접하네.

큰방 옆에 서고 지어 수천 권 책을 두고

성인군자 본을 받아 수신하고 제가하네.

네 칸 대청 크게 짓고 찾아오는 제자들과

고담하고 청론하며 도야하고 함양하네.

작은 방을 마련해서 찾아온 손 숙식하고

방 옆으로 다락 지어 난간 돌려 문을 열고

밝은 달 흐르는 구름 시를 지어 문답하네.

큰 사랑채 남쪽으로 중문 내고 행랑 짓고

중 행랑채 바깥으로 반듯하게 마당하고

마당 밖에 행랑 지어 솟을대문 날개 삼네.

솟을대문 큰 문짝을 넓게 열고 나서보면

서류동입 명당수에 돌다리 걸려있고

돌다리 밑 흘러내려 연못에 모여드네.

신명들의 도움으로 정성드려 지어내니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번듯이 들어섰네.

보은박 속 명인들이 흥부네집 지어 놓듯

법도 맞춰 형국 속에 알맞도록 지었으니

마을사람 칭찬이요. 인근사람 구경일쎄

당호편액 높이 달고 기둥마다 주련하고

동구 밖에 정자 지어 물물이 갖추어 두니

도편수의 규모솜씨 이제사 끝이 났네.

도편수 하직하고 물러나니

석수·와수·토수·도배쟁이·칠쟁이·소목장들이 대목 따라 물러간다.

머슴들이 마당걷이 하고나니 모든 일이 끝이 났다.


2.

맑은 날 비행기 타고 앉아 지긋이 내려다보면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터전이 평야를 이룬 지대에서도 마을은 산기슭에 자리잡았다. 들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 없지야 않지만 대부분은 산곡간에 있던가. 산기슭에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다. 강원도 산간의 집들처럼 뚝뚝 떨어져 자리잡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수십 채가 소북히 쌓아 놓은 듯이 모여있다.

좁은 땅, 산이 많은 영토의 조건은 이런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보다 인총이 적은 시절의 마을은 더욱 한곳에 집결되는 형상이었다고 생각된다. 상대의 부족국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고 짐작하고 있다. 자체 방어와 생존을 위한 수단에서 그런 구성은 매우 유익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하는 그렇게 높은 산이 없는 대신에 크고 작은 산이 연하여 있다. 산의 골짜기에는 흐르는 냇물이 있는데 산이 높고 험하지 않으므로 냇물의 흐름 이 빠르지 않고 구불구불 흐른다. 화살같이 빨리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자란 사람들이 우리나라 개울을 보면 느릿느릿 흐르는 속도에 졸음이 와서 그만 꾸벅거리며 졸고 만다고 농담할 정도이다.

산이 높고 깊고 물이 빠르면 산기슭에 살기가 어렵다. 안전한 터전을 잡고 마을을 형성하여야 한다. 이런 마을의 사람들 성정은 매우 담박하며 단기(短氣)이다. 깨끗해서 뒷맛이 가볍다. 그 대신 성미가 날카롭고 급하며 여럿이 의지하고 하나를 이룬다. 자연에서 함양된 인격의 바탕이다. 높은 산, 깊은 계곡, 빠른 물줄기에 막혀 이웃 간의 왕래가 어렵다. 자연 고립되기 쉽다. 고립은 산출물을 위축시킨다. 자연의 여건으로 먹고사는 농사도 풍족하지 못하다. 발달된 농기구가 없던 시절엔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 하였다. 그래서 타향 사람을 배척하기 쉽다. 부족·종족의 보존을 위하여는 남에게 나누어 줄 식량을 아껴야 하였다. 부족한 사람들은 넉넉한 고장을 습격하며 약탈하려 하였다. 고장끼리의 싸움이 잦고 보존을 위한 무기, 무술의 발달이 촉진된다. 나약한 사람들은 더 깊은 곳으로 숨고 그만큼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되므로 해서 고급정보를 얻는 기회가 적어진다. 낙후되는 원인이 된다.

그런 나라에 비하여 느릿거리며 흐르는 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성정이 느슨하고 푸근하며 넉넉하고 온순하다. 노래의 가락조차 느릿느릿 흐른다. 은근하며 끈기 있는 민족의 특성을 나타낸다. 우리나라가 여기에 속한다.

집은 그런 성정을 바탕에 깔고 건축된다. 자연에서 느끼는 미적인 감각, 잠재 의식화된 천연에서 함양된 지각에서 집을 구축하는 비례의 감각이 우러나오고 안정감이 추구된다.

형상 되어진 면모는 큰산과 깊은 골과 빠른 내가 있는 고장의 집과 다른 모습을 지닌다. 넓은 평야, 광활한 광야에서 자란 사람들이 짓는 집과도 다르다. 성정에 감응된 천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산형이나 넓은 들에서 빠른 냇물을 보고자란 사람들은 집에 강한 역점을 준다. 크고 높게 짓고 각이 서도록 꾸민다. 산만큼의 크기로 상대를 누르고 말겠다는 자존의 의식이 발동한다. 참지 못하고 급한 성격은 집의 구조를 뾰족하게 만든다. 산을 닮아 날카롭고 물을 본받아 촉박하게 짓는다.

우리나라는 둥글둥글한 집들이다. 뒷산의 산형을 닮아 초가지붕은 버섯처럼 둥글고 펑퍼짐하다. 유순하며 단조롭다. 아리랑의 가락이 지붕을 타며 구르는 듯한 여유와 박자가 있다. 날카롭고 촉박함에서는 멀리 벗어나 있다. 한옥의 특성이 여기에 있다.

감돌면서 굽이치면 물길은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다. 봉우리의 선이 흘러내리다가 갑자기 치솟으면서 주봉을 이룬다. 느릿거리며 흐르던 물이 긴장하고 느슨하던 산세가 다가서는 응결을 지닌다. 집도 이와 같아서 둥글한 초가지붕에 비해 탄탄하게 구조한 몸체에서는 박진감을 맛본다. 한옥의 특성이 이런 맛에 있다.

수만 년을 두고 집이 세워졌다. 수십, 수백만 채가 이 땅 위에 건축되었다가는 사라졌다. 오늘에 짓는 집도 언젠가는 자취를 감춘다. 생기고 없어지는 집의 흐름을 우리는 건축의 역사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