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37화

by 신영훈 posted Oct 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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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36화에 이은 중국학자들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이다.
이 글에 실린 고구려 일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의 개요는 이렇다. 우리 국사에서 배운 내용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민족이다. 高句麗라고 쓴다. 西漢 武帝가 玄토군을 설치하였을 때 그 현에 고구려족이 살고 있어서 그현의 이름을 고구려縣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대 중국문헌에는 高麗라 표기하였으나 <삼국사기>와 集安(번역자 주: 압록강가의 고구려 서울이던 고장)에 있는 고구려 好太王碑에서는 고구려라고 나라 이름을 적었다. B.C37년 북부여 왕실의 주몽(朱蒙 혹은 東明)이 혼인하여 고구려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정착해 살면서 기반을 조성하고는 주위 부락을 어울러 통일하여 나라를 건국하고 졸본천 흘승골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졸본부여라 하였다.
AD3년에 고구려 제2대 유리명왕이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기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는데  역시 민족의 호칭을 나라의 국호로 사용하였다.
고대 역사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족은 예맥계통에 속한다. 근년에 일부 고고학자들은 고고발굴 자료에 근거하여 고구려족의 기원은 요하유역의 원시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도 고구려족이 漢族이 아님을 시인하고 있다. 濊貊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족들의 흥만성쇠와 관계가 없음이 자명한 일인데도 중국역사에 편입하고 고구려를 중국의 한 변방인듯이 대우하려는 인식은 일종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