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66화

by 신영훈 posted Apr 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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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상당한 세월이 지났지만 에밀레미술관의 조자용趙子庸관장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와 건축설계를 하다 한국민화에 빠져 호랑이 그림을 수 없이 모아 미술관에 전시를 하였고 그의 공부는 도깨비 그림 쪽으로 빠지면서 재미 있는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하고 <한얼의 미술>이란 책을 스스로 출판하여 널리 알리려 애를 썼다. <한얼의 미술> 중에 '치우장수의 가면전쟁'이라는 내용이 있다.  조각작품을 페이지 아래쪽에 깔면서 위에 쓴 글인데 짧은 글이라 잠시 옮겨 본다.

치우장수의 가면전쟁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에서 장수가 난다고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가장 무서워한 것이 한국의 '장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명한 산꼭대기 마다 올라가서 큰 쇠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장수가 못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 청도 풍각면에 가면 '장수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는 옛날에 장수가 박치기한 자국이 남아 있더군요.
이제 부터 여러분과  같이 이 자랑스럽고 무섭고 신비로운 우리나라 '장수'에 대하여 연구해 볼까 합니다.
옛날 4천5백년전 옛날에 백두산 근처에 '환나라'라는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를 '신시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환웅'이라는 임금님이 계고 '천부경'이라는 이치를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 신시나라에는 큰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그 중에 '치우장수'81명이 가장 무서운 장수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옛날 책에는 치우장수들의 얼굴이 구리나 솨와 같고 머리에는 소뿔이 돋아 있고 이빨이 두치나 된다고 적었습니다. '신시나라'는 우리 조상의 나라이고 치우장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입니다.
중국사람들은 황제를 자기네 조상으로 알고 있으며 치우장수를 반역자라 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책에는 황제가 반역자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여러분들이 연구하여서 밝혀야겠습니다.
황제는 싸워도 치우장수를 당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번 싸운 중에서 동양최대의 전쟁은 '탇록의 싸움'이었습니다. 치우장수들은 처음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 얼굴에는 구리로 만든 무서운 도깨비 가면을 쓰고 황제의 군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입에서 안개를 뿜고 벼락소리를 내면서 황제의 군대를 처부셨습니다.
황제는 '지남차'라는 무기를 만들고 '소각대각'이라는 괴상한 악기로서 용의 울음소리를 내며 치우장수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탁록의 싸움'은 가장 오래고 가장 큰 싸움이었습니다. 중국 기록엔 황제가 이겼다 하고 우리나라 책에는 치우장수들이 이겼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로는 누가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도 여러분이 연구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조자용관장의 주장은 우리가 흔히 귀면鬼面이라 부르는 지붕의 위에 도깨비 얼굴 처럼 생긴 장식품을 탐구하며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귀면이란 단어가 합당한지를  추구하면서 우리 말로 이 장엄품을 이름지어 주는 것이 옳다고 여겨서 이런 글을 쓰게되었고 그의 글에는 도깨비 기와 자료가 실려 있다.

통칭 '귀면'이라 부르는 기와를 도깨비라는 개념 보다는 치우장수의 한 모습으로 보자는 주장의 제기인데 치우嗤尤장수는 군대의 상징인 군신軍神이도 하지만 공술工術을 발전시킨 장인의 으뜸인 장수匠帥이므로 이 '귀면' 이란 기와를 '장수기와'로 부르자는 주장이다.   우리로서는 한국건축용어의 순화를 위한 노력에서 일본식의 귀면 보다는 한국적인 용어를 채택함이 옳다고 한다면 조자용선생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 계열의 토도土陶제품이 적지 않으므로 일련하는 명칭이 정리되어야 그 분류가 일목요연해 진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견해가 있으면 논의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