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76화

by 신영훈 posted Jun 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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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에 방영되고 있는 <武人時代>라는 대하연속극을 본다. 고려시대의 이야기로, 시대 배경이 고려시대가 분명할진대 최충헌의 집도 고려시대 건물이어야 이치에 맞다. <고려사高麗史>에 최충헌의 집은 남산리男山里에 있었다 하며 그 집에 모정茅亭을 짓고 곁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으니 급제及第 최희崔熙가 쌍송시雙松詩를 지으니 여러 문사文士들이 화답하였다 한다. 극의 흐름에 이런 문화적인 이야기도 잠깐 삽입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또 <고려사 권129>에는 최충헌이 집을 활동闊洞에 새로 지으면서 인가 100여 채를 헐고 웅장하고 화려하기를 힘쓰니 주위가 수리數里에 뻗어 대궐과 비슷하였다. 북쪽으로 집이 시전市廛에 이르자 별당을 짓고 십자각十字閣이라 이름 하였다. 토목土木의 역사役事가 심하여 국내에 불평이 많았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가 집권한 시절에 이 집에 임금님이 이어移御하시자 최충헌이 맞이하고 크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여러 왕실 어른들과 고관대작의 벼슬아치들이 모두 밤새 시연侍宴하여 다음 날에 파하였는데 금수錦繡 채붕綵硼과 놀이가 사치함을 다하였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이웃의 살림집 100여 채를 헐고 구장毬場을 만드니 동서가 수 백보요 평탄하기가 바둑판 같았다. 매양 격구를 할 때면 반드시 군인들로 하여금 물을 뿌려 먼지를 적시게 하였다. 뒤에 또 인가人家를 헐어 넓히니 전후하여 점탈占奪한 것이 무려 수 백 채나 되었다는 기록이다.
이런 그의 집이 연속극에 등장하였으면 좋겠다. 고려시대 최상급의 살림집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집도 한옥에 속한다. 한옥은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속신俗信이 연극에 등장한 이 집으로 해서 씻어졌으면 좋겠다.
임금님을 모시고 하는 잔치의 그 화려함과 최충헌이 치장한 집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 단편적으로 보고 있는 당시의 미술품들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우리 고려시대 문화사 탐구에 큰 학술의 마당이 열릴 것 같다. 우리의 것은 이웃나라에 비하여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관점이 사실이 아님을 알려준다면 고려문화를 인식케 하는 커다란 공헌도 함께 이룩하였다는 칭송을 받아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떠시려는지. 그래야 연극이 더 실감나기도 하고 생동감이 넘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방영하는 중에 배경을 조성해 주신 재주 있는 분들의 노고를 기대해 본다. 고려시대 최상의 한옥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