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79화

by 신영훈 posted Jul 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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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도 예전의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고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자기를 알려면 먼저 선대先代를 알아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을 익힐 수 있도록 시청자들을 격려하는 방송 관계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극은 장면마다에 당시의 건축과 생활상들이 묘사되면서 진행된다. 그런 장면을 통하여 옛날 일들을 익히게 되는데 더러 사리事理에 합당하지 않은 듯한 장면도 있어서 혹시 보는 이들이 혼동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하게도 된다.
내 공부가 옛날 건축과 문화라 하지만 옛날을 다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치로 보아 왕궁 마당에 석등石燈을 설치하였을 것 같지 않은데 어느 사극의 궁중생활 모습을 연출한 장면에 석등이 있었다. 마당으로 왕비가 보행步行하는 일도 이상하려니와 석등이 설치되어 있는 광경은 뜻밖인데 여러 번 석등이 보였다.
한국건축에서 석등은 절에 설치하는 것이 기본이고 법당 앞 석등을 법등法燈이라 하면서 부처님 법이 광명같이 빛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돌로 다듬어 만든 석등 중에 그것이 능묘陵墓에 설치되면 보통 장명등長明燈이라 부른다. 그 외에 왕궁에 석등을 설치한 기록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것으로 배우고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이 쓰신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사또가 처음 부임하기 위하여 임지로 향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도착하여 하는 예의 까지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는데 그 중에 길거리에서 권마성勸馬聲을 너무 요란스럽게 하는 일은 마땅치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 연극 연출에서도 그런 우리 선인先人들의 다소곳함을 존중하였으면 좋겠다.
그 책에는 처음 부임하여 자기가 다스릴 고장을 파악하기 위하여 관내 지도를 그리는 장면도 있다. 이런 노력들을 사극에 삽입하여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선조들의 자세와 그 지도를 그리는 작법作法 등을 알 수 있게 해주어서 결과적으로 사극이 역사교육의 구실까지를 다한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전에 보니 경복궁 근정전 앞으로 한 관원이 자나가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데 그 근정전 문짝에 바른 창호지가 눈에 뜨였다.
한 동안 현대의 구경꾼들이 문과 창에 바른 창호지를 손가락을 자꾸 뚫고 안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공무원으로 궁을 관리하는 이들이 아래 부분의 창호지를 잘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적이 있었다. 그런 창호지 앞으로 조선시대 관원이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철없는 한 아이가 조선시대엔 창호지를 저렇게 바르고 살았었느냐고 매우 의아하게 묻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앞에서 연극을 하려면 창호지를 잠깐 다시 바르고 하는 일이 고즈넉한 태세일터인데 그 연출자는 그런 마음씨를 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완벽함이란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려 하는 노력만은 가상한 법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한다는 것은 무성의하거나 몰라서 지나치고 만 경우일 수도 있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누구를 비아냥거리거나 탓하자는 말이 아니라 부족하면 연구하고 보충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지 않으냐 하는 점을 일깨우자는데 있다.
누구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런 일에 정통한 분들로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을 활성화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터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이야기를 꺼내었다. 목민심서라도 읽으며 당시의 몸가짐을 터득하여 사극의 기본자세를 마련하는 일이 선행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이야기의 운을 떼었다.
그 일은 우리 한옥문화원에서라도 주축이 되어 전문가들로 하여금 탐구하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판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점점 향상되어야 하는 일이 우리의 사극이라면 이런 기본 노력이 돈독할수록 앞날의 발전이 양양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런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