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87화

by 신영훈 posted Sep 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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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學思齋는 이제 유명한 집이 되었다. 또 문화의 산실로 큰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집 주인 김영훈 선생은 L.A에서 경영하는 회사 직원들 연수를 학사재에서 실시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인 직원들의 연수에 이어 금년에는 외국인 직원들을 초청하여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노력을 추석 전에 또 傾注한다.
작년에 다녀간 사람들이 스스로 한국특성이 어린 제품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주어 회사 제품의 이미지가 아주 바짝 高揚되었다고 한다. 즐거운 결과를 얻은 셈이다. 금년에도 좋은 성과를 얻으시라고 木壽는 축원하고 있다.
엊그제 현암사에서 보낸 책을 한권 받았다. <한옥살림집을 짓다>라는 책이다. 고려대학교 건축과 출신의 김도경박사가 저자로 學思齋 짓던 이야기가 차분히 서술되어 있었다.
책 末尾에 ‘집주인의 글’이 실려 있었다. 단숨에 읽었다. 감명이 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여러분들과 함께 읽었으면 싶다. 어떠신지요. 그래서 여기에 글을 옮겨 보았다.

「 집주인의 글
한옥과 함께 나이 먹는 것이 즐겁습니다.

집 주변에 야생란, 붓꽃, 돌단풍, 철쭉 등의 야생화를 심고 마당에는 물확을 들여놓았습니다. 들꽃을 따다  꽃누루미를 해서 안방 미닫이창 창호지에 붙여 놨더니, 어스름해지면 꽃이 실루엣으로 살아납니다. “집은 지어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집의 완성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라던 김도경박사의 말을 떠올리며, 이렇게 조금씩 집 단장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리 전통한옥은 자연을 닮았습니다. 산자락에 의지해 집을 앉히고 뒷산의 산을 따라 지붕선을 만듭니다. 주거 공간 자체가 자연과의 경계가 없어, 방문만 열면 담장 너머 산과 들이 집안으로 가득 들어옵니다. 마당에 조경석은 원래 자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한옥의 주재료인 나무와 흙은 헐어 부서져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집은 집주인의 성정을 그대로 닮는다는데, 저는 오히려 자연을 닮은 한옥을 따라가는 것 같아 한옥과 함께 나이 먹는 것이 즐겁습니다.
  강화 유적지와 조화를 이루고 전통의 멋스러움이 온전한 한옥을 짓겠다고 결정을 내릴 당시,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우리 가족에게 한옥은 불편하지 않을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많이 추울 텐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학사재를 통해서 전통의 멋을 제대로 향유하면서도 실생활에 불편하지 않은 한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선 생활의 편의를 위하여 부엌을 안채로 들여 식탁과 싱크대를 설치한 입식으로 꾸미고, 현대식 욕실을 갖추었습니다. 겨울에는 심야전기를 이용한 난방으로 따뜻하고 안채 대청에는 서양식 벽난로를 설치했습니다. 여름의 냉방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선풍기 없이도 시원하고 쾌적합니다.
이렇게 학사재 자랑을 하다보니, 우리나라 최고의 한옥 장인 신영훈과 전통건축 기법을 전수한 도편수 조희환, 이론과 실무를 고루 갖춘 지은 이를 비롯하여 학사재를 지은 모든 이들과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전통한옥을 알고 보존하려는 이, 우리 것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는 이, 그리고 건강하게 잘 살고 싶은 이에게 한옥을 ‘삶터’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끈후끈한 구들방에 몸을 지질 때의 개운함이나 달 밝은 밤 사랑채 누마루에서의 고아한 정취를 직접 체험해 보기를 권합니다. 한옥을 짓고 한옥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어설프게나마 한옥 관련 준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집주인 김영훈 선생은 어느덧 전문가 대열에 들어섰다. 그만큼 온 정성을 다하여 자기 집을 한옥답게 가꾸려는 마음으로 현존하는 많은 명품 한옥에 접근하고 있어서 글을 통하여 터득한 지식에 비하면 월등한 식견을 구비하게 되었다고 木壽는 인정하고 있다. 김 선생은 자기의 소망을 절절이 밝히면서 그의 글을 끝맺었다. 마저 읽어 보자.

「학사재가 강화도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수십 년간 주한외교사절에게 한국문화를 강의해 온 큰형님의 제의로, 외국인들의 한국문화 체험의 장으로 가꾸고 있습니다.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 버린 요즈음에 나무냄새, 사람 냄새가 가득한 집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화도 덕진진 산기슭에 자리 잡은 학사재에 한번 다녀가십시오. 한옥을 우리네 살림집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집주인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한옥문화원에서는 학사재를 현장 학습의 명소로 크게 활용하고 있다. 어느 집 못지않게 주인 닮은 한옥이 그 기품을 더해가고 있어서 한옥에 관심을 둔 이들에게 한옥을 말하는 데는 더 할 나이 없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학사재는 유명한 名家가 되었다. 이 집을 보고 자기도 저런 집 갖고 싶다고 지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고맙고 대견한 일이다.
오호통재라! 학사재 지은 조희환 도편수. 아직 젊은 나이에 급히 극락으로 떠났다. 보궁 짓는 일이 급했나 보다. 하늘에서 불러들였다.
조 도편수님. 당신이 임종 때 木壽에게 위촉한 이광목대목을 도편수로 삼고 지금 평창의 伯德齋 짓는 일을 수행하고 있소이다. 다른 제자들도 자기 몫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을 덜고 上天의 일에나 전념하시구려.

<마음으로 지은 한옥, 學思齋 이야기>라는 제목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다보니 木壽 이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서문을 써준 기억이 되살아난다. 집을 짓고 책을 만들어 정리하는 작업은 참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미 안동 하회의 尋源精舍를 짓고 집의 안주인 尹用淑님이 그 날렵하고 정겨운 필치로 <어머니가 지은 한옥>이란 제목의 책을 만들어 심원정사 집 짓던 때의 일과 생각을 정리하였고 큰 호평을 얻었음을 알고 있다.
학사재 김영훈 선생도 이 책을 읽으며 감명을 받고 학사재 짓는 일에 진력하였다. 이제 김선생의 글을 읽고 마음이 열린 분이 새로운 한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실 차례이다.
木壽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이들 명인 분들에게 큰 절을 올려 찬탄하려 한다.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