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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은 주인이 자주 바뀐다.>

역시 『東平尉公私見聞錄』에서 또 인용하였다. 「좋은 집은 주인이 자주 바뀐다」와「獨島와 竹島 시비는 옛날에도 있었다」두 편을 실었다. 독도의 문제가 우리들에게 관심인 것처럼 옛사람들에게도 주목거리였다는 정보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된다.

*좋은 집은 주인이 자주 바뀐다

徐後行은 내시 중에서도 부지런하고 役事를 잘 하였다.  왕자나 왕녀의 집 짓는 역사를 下命받으면 빨리 집 짓는데 주력하지 든든하게 지으려 하지 않았다. 누가 물으면 까닭을 대답하였다. "부귀는 덧없는 것이고 집은 곧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수가 많다. 서울의 좋은 집중에 자손에게 온전히 전해진 것이 몇 채나 되는가? 집이 망가지기 전에 주인이 바뀌게 되면 팔려 가거나 官에 몰수당하고 뜯기거나 허물고 새로 짓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무익한 고생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하였다.

사람들이 집 짓는데 성실하지 않다고 책망하였지만 사실 내시 말대로 집주인이 오래 살지는 못하였다.


울릉도와 竹島 시비는 옛날에도 있었다.

울릉도는 동해 가운데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파도와 바람이 가장 험하다. 날이 밝을 때는 江陵, 三陟 등 가까운 육지 높은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희미하게 三峰이 보이는데 물결 속에 혹은 보이고 혹은 보이지 않는다. 더러 말하기를 멀리가 7, 8백리라 하고 천리라고도 하는데 확실히 말하는 이는 없다. 漁民들이 왕래는 하지만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를 모르고 지냈다. 숙종 20년(甲戌년, 1694) 어부들이 고깃배 여러 척으로 독도에 갔다가 왜인을 만났다. 왜인이 어부들을 그들 배로 유치하고 돛대를 올려 순풍을 받고 대마도로 가면서 "조선사람이 일본 죽도 경계선을 넘었다고" 소리치며 압송하였다. 대마도에서는  즉시 조선정부에 사신을 보내 왔다. 조선정부에서는 자고로 울릉도는 우리나라 땅이며,  祖宗朝 이후로 수로가 멀고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두었을 뿐 우리 땅임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朝廷에서 공론하기를) 왜인이 그 땅을 竹島라 하나 이름이 다르고, 왜국 소속으로 삼고자 한다면 반드시 관을 보내어 그 섬에서 나는 産物을 조사하고 백성을 조사한 연후에 분명하여질 것이므로 가히 왜인을 물리치고 왕래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니 前兵使 張漢相을 三陟僉使로 삼고 倭譯 安愼徽 등 150명을 인솔하고 가서 철저히 조사하게 하였다.

漢相 등이 숙종 20년 9월에 출발하여 21만에 울릉도에 안착하였다. 상륙하여 섬을 한 바퀴 돌고 보니 섬 전체가 절벽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에 삼봉이 우뚝하게 솟아 있었다. 嶺東에서 바라다 보이는 三峰이 이것이다.

산의 중턱 아래에서야 비로소 土山이고 골짜기는 깊다. 초목이 하늘을 덮었고 길은 좁고 옹색하여 들어서기가 어렵다. 토지도 척박하여 농사짓기에 마땅하지 않고 겨우 대나무 밭이 몇 곳에 있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그 중에 있는데 불과 3, 40일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울릉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이 풍족하며 쥐가 고양이만하다고 하며, 대나무가 아름드리만 하다 하고 예부터 나라가 있어 鬱陵島國이었다는 말이 전하나 이는 모두 낭설이다.

漢相 등이 가서 도면으로 그려온 것을 보면 섬 전체의 둘레가 150~160리 밖에 되지 않으며, 남북이 70리, 동서가 60리 밖에 되지 않으니 나라 세울만한 넓이에 이르지 못한다. 백성들이 살았던 옛터가 있으나 10여 곳에 불과하니 한 읍이 되기에도 부족하여 나라 세우기에는 합당하지 않다.

産物로는 나무가 으뜸인데 동백, 紫檀, 측백, 黃蘗, 槐 , 桑楡 등이나 桃李, 松榛, 橡票 등은 없다. 새는 鳥鵲, 짐승으로는 고양이와 쥐가 있고 水族으로는 바위틈에서 사는 可支魚,   등이 있다 한다. 더러 울릉도의 복숭아는 크기가 쟁반만 하다거나, 노루와 사슴이 떼지어 산다는 것은 모두 낭설이다. 可支魚는 비늘이 없고 꼬리가 있고 몸에는 네 발이 있는데 뒷다리는 매우 짧다. 육지에서는 능히 걷지 못하나 물에서는 비호같이 달아난다. 우는 소리는 어린애 소리를 하며 그 기름은 燈油로 쓸만하다고 한다.

漢相이 돌아온 뒤로부터는 왜인들은 다시는 자기네 땅이란 말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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