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19 22:40

木壽의 런던통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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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이제 막바지 단계로 치닫고 있어 지붕에는 기와를 잇고, 아래에서는 수장 드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포장해서 보낼 때 혹시 운송 도중에 나무가 뒤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수장재를 70% 정도만 다듬은 상태이어서 완전히 다듬으려니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수시로 의논을 해야 해서 나도 꼼짝 못하고 일터에 잡혀 있어야 하여서 런던의 집 구경은 아예 단념하고 있는 처지이다.

시내로 돌아다니며 오래된 집을 보는 일을 은근히 기대하고 왔는데 이번 행보에 단념하는 수밖에 없고 다음에 다시 오면 그때야 집 구경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 언제나 다시 올 수 있으려는지--.

전에 하바드대학에 잠깐 가있던 시절에 보스턴의 건물들이 자랑하고 있는 테라코타에 관심을 두고 자료를 수집한바 있었고 보스턴에 이어 펜실베니아, 시카고와 뉴욕, 로스엔젤레스 등지에서고 그런 자료 수집을 계속한바 있었다. 그때 테라코타를 건축물에 장식으로 채택한 곳이 구라파이고 영국도 그런 나라에 속한다고 해서 영국에 가면 건축도자를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7월6일에 갔다가 이튿날 돌아왔다. 덴마크의 고벤하븐(코펜하겐)을 방문하였다. 1966년도인가 국립박물관 한국실에 사랑방 한 채를 지었으니 벌써 34년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걱정을 하였다. 그 후로 한번도 가보지 못해서 그 상태가 어떤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첫사랑을 두고 떠나온 후로 만나지 못하고 소식조차 듣지 못하였던 참에 찾아가는 일이니 가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분에게 이번 영국에 가면 애인이 생길 것 같다고 하였더니 눈이 둥글해지면서 어리둥절하는 표정이다. 다 늙은이가 주책없이 웬 때아닌 애인 타령인가 하였나 보다.

영국박물관의 사랑방은 지금 한창 인기가 절정의 단계에 이르고 있고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붙어 앉아 있으니 마치 애인과 사랑을 하는 모습 같다고 주변에서 놀린다. 영국에서 새 애인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덴마크 고벤하븐의 늙은 애인을 찾아가는 마음이 오죽하였겠는가. 그야말로 심혈을 기우려 지어낸 사랑스러운 분신이나 다름없는 애인이다.

비행기가 덴마크에 도착하고 기차를 타고 국립박물관에 당도하기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렵다. 박물관 한국실의 학예사가 마중을 나왔다. 매우 반가워한다. 더러 책이나 잡지 등을 통하여는 봤지만 실물과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다는 인사이다.

박물관 건물은 몰라볼 정도로 말쑥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대대적인 수리를 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단다. 한국실은 제자리에 있었다. 당초 계획은 1층으로 옮기려 하였던 것이나 '백악산방' 한옥을 옮길 수 없어 일본관과 중국관도 제자리에 그냥 머물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백악산방'의 인기는 매우 높아서 다른 나라에서조차 일부러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모니터를 벽면에 붙박이로 설치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요긴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면서 함께 작동을 해 보았다.

'백악산방'의 전경이 뜬다. 손가락으로 짚으면 역시 그리로 들어가 아랫목이 보이게 한다. 배치된 가구에 손가락을 얹으면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멋진 방법을 택하였다. 지저분하게 설명판이나 안내판을 여기저기 세우니 보다는 훨씬 세련되었다. 칭찬을 하였더니 학예사는 겸손하게 "워낙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일이 대답하기 어려울 지경이다."라 한다. 고마운 일이다.

이만큼 다시 떨어져 바라본다. 34년의 나이를 곱게 먹었다. 전혀 뒤틀림도 없고 터지거나 갈라지지도 않았다. 어디 고장난 부분 없이 나이를 먹었다. 늙은 애인의 고운 자태를 만나는 순간 코끝이 짜르르하는 전륜이 치민다. 나이를 먹어 늙은 가슴에도 만남의 싱싱함이 느껴지는가---.

늙은 애인을 보니 영국의 새 애인의 30년 후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토록 곱게 늙은 모습이 되려니 싶은 안심이 된다. 아디 고장이나 나서 정말 허물지도 전시하기도 어렵게된 애물단지가 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가시니 즐거움과 고마움이 가슴을 고동친다.

집에서 해준 한복을 입고 갔었다. 마고자에 미라단추까지 단, 당시로서는 가장 호사한 의복이었다. 그 의복을 입고 개관하는 날 사랑방 아랫목에 앉아 주인 행세를 하였고 그 장면이 신문마다에 실렸었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실의 유물이 부족한 처지라 그 의복을 벗어 진열장 속에 진열하였다.

고운 의복을 정성 드려 마련해준 집사람에게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하였던 일이 주마등 같이 스치는데 지금도 진열장 속에 다른 의복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1964년 당시의 일들이 코끝이 시큰하도록 떠오른다.

이 집 짓는데 애써주신 최순우 은사님을 비롯하여 주관하던 공보처의 홍종철 장관, 집 지은 도편수 이광규 대목장, 목재를 공급해준 아현 목재 김사장, 이 박물관 동양부장 마타보이어 학예관도 재작년에 타계하였다고 한다. 이제 혼자 뿐이란 생각에 가슴이 저린다.

고맙다는 인사로 들고 간 <한옥의 고향> 한 권을 선물로 주고 점심을 대접하였다. 매우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옛 애인을 만난 뿌듯한 가슴을 안고, 다시 뒤돌아보며 작별인사를 하려니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는지--, 그 애인은 이미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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