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08 13:10

영국 박물관 인도실 2

조회 수 2011 추천 수 27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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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실은 면적이 매우 넓고 동쪽 현관에서 멀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잠깐 진열실을 떠나 사랑방 짓는 작업장에 가서 찾아온 사람들과 만나고는 한쪽에 앉아 한국어판의 <대영박물관> 안내 책자를 읽기 시작하였다. 인도편은 26페이지부터이다. 참고를 위해 잠깐 훑어본다.


인도에서 예술활동이 시작된 증거는 기원전 8000년으로 돌아가지만, 최초의 도시문명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번성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이다. 하랍파, 모헨조다로, 칼리반간 등 3대 대도시들은 아주 크고 도시계획이 잘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 대량의 토기, 테라코타상, 돌연장, 그리고 구리연장들이 발굴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도시생활이 쇠퇴하고 사람들이 시골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구리는 기원전 1000년경 철로 대체될 때까지 연장을 만드는 주자재로 남아 있었다. 기원전 800년경에 두 번째로 도시화가 시작되고 부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왕조 국가와 작은나라들이 탄생하였다.


인도 북부에서는 인도 유럽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 인도유럽어로부터 산스크리트어와 현대의 북인도 언어가 유래되었고, 이들 언어와 함께 구전 종교가 시작되었다. 철학과 종교 연구가 활발하였으며, 복잡하고 고도로 규제가 심한 힌두교및 그의 대안인 불교와, 마하비라가 창시한 자이나교가 생겨났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 마우리아 왕이 북인도를 통일하였다. 그는 제국을 확장하고 그 권력을 합법화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했다. 마우리아 시대가 끝나고 분열의 시대가 도래하였지만 불교는 폭넓은 신자 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 사이의 큐산왕조시대에는 간다라에서 불교예술이 번창하였고, 데칸에 있던 사타바하나왕조는 풍성한 아미라바티 조각품을 창조하였다.


글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랑방 짓는 사람들이 참을 먹는다고 휴게소로 자리를 옮긴다. 나는 참 먹을 자격이 없다. 한 일이라고는 잔소리와 보고 읽는 일밖에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인도실로 내려갔다. 나머지 글은 다음에 읽기로 하였다.


인도실에는 간다라에서 조성되었다는 불상이 진열되어 있다. 전에 인도에 가서 칼캇다 박물관에서 보던 멋진 작품과 거의 같은 수준의 조각품이다.

아직 불상의 전형적인 머리모양인 나발이 등장하기 이전의 서양식 곱슬머리를 한 불상인데 살아 움직이는듯한 생동감이 있는 그런 유형이다.


외국의 유수한 박물관에는 이와 같은 유형의 불상들이 상당수 전시되어 있다. 그 많은 수가 유출되려면 그 시대 작품 제작이 상당히 활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불교가 그만큼 융성하였음을 말하는 증거이기도 하겠다.


칸다라 부처님과 상면하고 있는 중인데 빨리 올라오라는 전갈이 왔다. 박물관장이 찾는다는 것이다. 얼른 작업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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