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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朴琮) 선비의 두 번째 행보는 학포를 떠나 총석정에 이른다. 총석정은 해금강(海金剛)이라고도 우리가 부르는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아직 우리는 대부분 가서 직접 감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선비의 견해를 들어본다.


「총석정(叢石亭)은 통천부(通川府)의 북방 15리에 있다. 산은 고미포( 尾浦)로부터 일어나 바다로 5리쯤 나가다가 멈추었다. 산의 왼쪽으로 바닷가에 바위벼랑이 섰고 사면으로 모나게 다듬어졌는데 면마다 방정(方正)하여 비록 석공이 먹줄을 치고 다듬었다 한들 예서 더 정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중에도 가장 기이한 것은 세 개의 기둥처럼 따로따로 솟아올라 기울어지지도, 비뚤어지지도 않은 채 들여 닥치는 파도를 이겨내고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기세의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대저 산의 골격은 모두 다 이런 돌로 되었는데 바다에서 오랜 기간 지나면서 운근(雲根)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풍파가 이를 찌르고 쏘며, 씻고, 갈고 하여서 부러진 것도 적지 않지만 오직 세 바위기둥(三叢) 만은 똑바로 모가 서서 만고에 우뚝 솟아 있으니 그 늠름한 기풍을 그 무엇이 감히 범하고 굽힐 수 있겠는가?

사람에 있어서도 능히 이같이 뚜렷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세상이 뒤바뀌어지는 그런 큰 변고가 있을 때라도 당당히 국가의 주석(柱石)이 되었던 사람이 무릇 그 얼마나 되었던고?

총석정이란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알려진지는 오래다. 나라에서 벼슬한 경대부(卿大夫)들로서 이를 구경치 않은 사람이 없지만 다만 구경하고 난 다음에 조정에 돌아가 일 한 것을 보면 나라를 위해 바르고 곧은 절의를 가지고 난관을 극복하면서 살아 간 사람은 매우 적으니, 비록 그들이 총석정을 보았다고는 하나 나로서는 반드시 이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내가 정자에서 이를 동행하는 민숙에게 말하였더니 그는 "우리들은 뜻을 세우고 또 실천에 있어서 마땅히 총석으로써 자신을 격려할 것뿐이니 무슨 여가에 경상(卿相)을 논할 것인가"라고 하기에 나는 그렇다고 하였다.

정자는 산 위에 있는데 총석(叢石)을 보기에 편리하기에 총석정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삼일포(三日浦)

삼일포는 고성(高城) 북방 5리에 있다. 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서로 그 트인 곳을 막아 호수(湖水)를 둘렀으니 목걸이처럼 두르고 옷깃처럼 여미었다. 그리고 호수는 둘레가 7리쯤은 되겠으며 푸르고 밝기가 새로 박은 유리와 같다.

남쪽에는 평평한 언덕들이 호수 안으로 뻗어 들어갔는데 오른편 것은 호수의 절반까지 가서 끝나 그 넓이가 점점 좁아지면서 목이 가느다랗게 되어 서편으로 기울어졌다. 푸른 솔이 그 등을 덮고 나가다가 솔이 끝나고는 바위가 일어섰는데 그 바위 위에 또 바위가 놓여 2층으로 된 뒤쪽에 '삼일호(三日湖)'란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고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가 쓴 글씨인지 모른다.

좌편 언덕은 호수가 반이나 들어가서 돌연 일어나 봉우리가 되고 그 줄기가 떨어져서 다시 평평한 언덕이 되었으며, 그 언덕이 다시 수 십보나 뻗어 들어가서는 또 일어나 봉우리가 되었는데 이 봉우리는 앞 봉우리 보다 퍽 작지만 죄다 기이한 바위로 되었다.

북쪽 석벽에는 「술낭도남석행(述郎徒南石行)」이란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이끼가 끼어 분명하지 않고 동쪽에는 작은 바위들로 섬을 이루었는데 그 위에 정자가 있어 단청이 휘황하고 바위 면에는 「사선정(四仙亭)」이라고 새겼다.

영랑(永郞), 술랑(述郞) 두 사람은 곧 신라의 화랑인데, 친구 화랑 두 사람과 함께 이 호수에서 사흘 동안이나 놀다 갔다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들을 사선(四仙)이라 하였고 이 호수와 정자의 이름도 여기에 연유된 것이다.

섬의 북쪽 변두리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그 소나무를 지나 산 아래에는 암자가 있는데 이것이 몽천사(夢泉寺)이다.

나는 민숙과 함께 걸어서 좌편 언덕 송림을 뚫고 송림이 끝난 높은 바위에 앉았다. 종을 시켜 몽천사 중을 불렀더니 중은 벌써 솔 사이로 나와 작은 배를 지어 우리를 맞는 것이었다. 먼저 사선정에 오르니, 수면은 거울과 같이 맑고 갈매기는 물결을 희롱하며, 바람이 솔 사이로 들어오니 그 소리가 물소리와 같다. 현판에는 삼연(三淵 金昌欽), 택당(澤堂 李植), 간이(簡易 崔琳)의 시가 걸렸다.

다시 배를 저어 솔 숲 언덕에 대놓고 걸어서 몽천암에 들어갔다. 중의 말이 이 암자에는 처음엔 물이 없었으나 꿈에 신이 와서 바위 아래 몇 자를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 해서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샘물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고로 夢泉이라 한다는 것이다.

단서암(丹書庵)에 올라 심향비(沈香碑)를 보고 배를 타고 오른쪽 언덕에 이르러 걸어서 솔숲을 빠져 나와 보니, 중은 노를 저어 돌아가고 있는데 풍경이 그윽하고 조용하여 절경이다. 생각컨데 이 호수는 사면으로 봉우리가 병풍 같이 둘렀고, 좌우로는 섬과 언덕이 높이 있어서 마치 화가가 자기 뜻에 맞게 그림을 그린 것과 같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호수와 산수(山水)이다. 그리고 산수를 즐긴 두 화랑의 유적이 전하고 있어, 더욱 아름답고 소담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놀라게 하고 보는 사람을 현혹시킨다. 진실로 신선이 그 가운데 있을 것 같으니 산수의 이름이 역시 이와 같다.」


***박종선비는 이어 「청간정」. 「낙산사」를 순방한다. 그 다음이 「경포대」이고, 그 다음엔 「죽서루」로 간다. 우리도 그를 따라 다음차례로 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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