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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박종(朴琮)선비의 유람을 따라가며 그의 견해를 들어본다. 이번엔 우리도 강릉에 가면 들르는 경포대로 가본다.


경포대(鏡浦臺)

강릉부에서 북으로 10리, 바다까지 평탄한 초원을 사이에 두고 푸른 호수가 있는데 곧 경포이다.

경포에는 산이 서편으로부터 바로 경포의 허리로 들어와서 호수가 끝난 데에서 다행히 연결되어 있다. 산의 남쪽에 평평하고 둥근 것이 한 구(區)를 이루니 이를 외호(外湖)라 하고 산의 북방 평평하고 둥근 한 구를 내호(內湖)라 부른다.

외호를 볼 때에는 내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절벽에서 외호를 누르고 서있는 정자를 경포대라 하는데 오르면 전망이 멀리 까지도  가슴이 훤하게 스스로 트인다.

봉우리 기슭에서 내호를 굽어보고 서 있는 정자를 망해정(望海亭)이라 하며, 여기에 오르면 아늑하고 그윽해서 정신이 안정되니 이것이 각기 구를 구별하여 서로 정취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산의 모습과 물빛, 안개와 구름, 풀과 나무, 모래 언덕과 물새가 노는 경관은 대개 같으나 그 규모에 있어 내호는 작고 외호는 크다.

아득히 바다 멀리 하늘 끝에 돛단배가 석양을 가로 띠고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다보는 맛은 내외호가 다 같으면서도 호수가 바다와 서로 마주 대하고 서로 이웃한 점으로는 내호가 외호 보다 낫다 하겠다.

외호 정자(경포대)의 창수(創修)는 모두 관아에서 하였으며 현판에는 숙종대왕의 어제시(御製詩)와 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서문, 이 서문은 율곡이 어려서(10세) 지은 것으로 선생 덕업(德業)의 처음과 끝이 여기에 간직되어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장주도 내가 아니오, 나비도 物이 아니라, 진실로 꿈도 참도 없다. 範이 망하지 않고는 楚나라도 있는 게 아니다. 얻고 잃은 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 한 句는 이미 금강산에 들어가서 수학한 저의를 말한 것이고, 「현달했다 해서 즐길 것 없고 막혔다고 해서 슬퍼할 게 없다. 거의 도에 나갈 수 있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엎드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니 가히 하늘과 사람의 흉을 면하겠다.」 이 한 귀는 聖人의 저의, 그리고 「융의 나라에 누운 용과 위천의 어부가 비록 명망을 구하는 선비는 아니나 어찌 세상을 잊어버리겠는가」 이 한 귀는 사업의 저의가 나타나 있다 하겠다.



내호 정자(망해정)의 창건과 수리는 대개 선비들이 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흠은 일찌기 제자 몇 사람과 함께 이 정자에서 주역을 강론하였다 한다. 정자 현판에는 민섬촌의 중수(重修) 서문(序文)이 있다. 대개 호수의 승경(勝景)을 논한다면 진실로 절경이어서 치성의 비홍호 보다 그 짜임새는 훨씬 작아도 환경은 대단히 묘하여 동연호(東蓮湖)와는 그 환경에 있어 흡사해도 국면은 그것 보다 크다. 그것과 이것이 가히 백중이라 하겠다. 생각컨데 이것은 이름이 나고 저것은 묻혔으니 이는 하나는 북쪽이 다한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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