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44화

by 신영훈 posted Dec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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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산성에 올라갔을 때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성벽 따라 걸으며 능선 위로 솟은 부분의 구조를 보니 무너진 것 들중에 더러 무너지지 않은 부분이 남았는데 우리가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 혹은 다른 여러 산성에서 보듯이 성벽 위로 성각퀴가 솟아 있는데 분명히 몸을 가리고 활을 쏘던 구멍도 있다. 우리나라 산성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본다. 결국 그렇구나.
성각퀴 안쪽으로 간격이 거의 일정한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더러 구멍은 드러나 있기도 하고 더라는 돌을 덮어 숨겨두기도 하였다. 숨겨진 돌을 치우고 보니 구멍은 지름이 약 18 ~ 20cm가량인데 깊이는 30cm가 넘는 듯이 느껴지나 일정하지 않다. 벌써 세월이 언제인데, 상당히 메꾸어졌을 것이니 원래 규격을 알기는 어렵다. 도대체 이런 구멍을 무엇에 사용하였을꼬? 이리 저리 궁리하나 전혀 접근이 안되어 난감하여 주저 앉아 있는 판인데 마침 면식이 있는 고구려 문화를 전공하는 중국학자 한 분이 여러사람들과 함께 지나간다.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고구려 문화유적을 안내하고 있나 보다. 일행에게 나를 소개하고 내게 고구려 건축의 특성을 짧게 설명하라고 해서 잠깐 이야기하고는 그에게 이 구멍에 대하여 질문하였더니 다들 듣게 큰소리로 설명하였다. 이 구멍에 알맞은 굵기의 나무를 묻어 세운다. 그 중간에 작대기를 묶어 밖으로 돌출하도록 끈으로 고정하고는 이쪽과 저편의 작대기 사이에 그물을 만든다. 마치 시렁 처럼 그물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잔뜩 실어둔다. 적이 공격해 오면 가깝게 이르기를 기다려 작대기 맨 끈을 자르면 그물에 실렸던 돌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공격해 올라오던 적병들을 시살하니 돌에 맞은 적병들은 갈데 없이 아래로 굴러 떠러지는데 그 언덕의 높이가 워낙 천야만야하니 한 번 구르면 다시는 기어오르기 어렵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 학자가 떠난 뒤에 통역을 맡아서 해준 연변대학생은 중국학자가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만 듣도록 한 소리 중에 자기가 들은 바로는 중국의 성에는 이런 시설이 없다고 하더란다.
처음에 우리는 수원의 화성에서 보듯이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뜨거운 물을 퍼붓거나 기름을 붓고 불을 당기는 그런 용도는 아닌가 싶어 우리 일행 중의 젊은 이들은 무너진 곳으로 해서 성벽 밖으로 나가 성벽에 구멍이 나 있는지를 조사하였으나 그런 석루조石漏槽에 해당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 학자의 설명이 적합하다고 느껴지는데 국내의 고구려 성벽에서도 이런 방어용의 시설이 있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다. 내 게으른 성정으로 해서 국내 여러 성들을 충분히 조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 지성인들이 고안한 저런 시설을 우리는 주목해 둘 필요가 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이런 시설을 국내 고구려성에서 보았다면 좀 알려주기 바란다. 다 함께 정보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젊은이들 따라 나가서 성벽이 보이는 기슭에 서서 성벽을 올려다 보니 벌써 2천년에 가까운 세월 그렇게 버티고 있는 성돌에 낀 이끼가 아련하다. 눈물이 난다. 알기 어려운 뜨거운 눈물이 한참이나 그렇게 흐른다. 이 돌 떠다 쌓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즉 혹 상한 분도 계셨을지 모르며 여기 성벽에 의지하고 싸움이 벌어졌다면 적지 않은 분들이 목숨을 잃으셨을 터이다. 이름 모를 그 어른들의 힘찬 기개氣慨가 저렇게 푸른 이끼가 되어 넋을 전하고 있다면.....,  싶은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