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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朴琮선생님의 백두산등정기를 계속해서 읽어본다. 지난번엔 20일까지의 行步를 소개하였으니 오늘은 21일부터의 이야기를 경청해 본다.

21일 壬申, 개였다. 새벽녘에 깨니 장막 틈으로 별빛이 비추어들고 있다. 이윽고 날이 밝으면서는 구름 한 가닥이 송림에 걸려 있다. (어제 와서 잔 綠雲이란 고장)에서 동쪽으로 한 8리쯤 가니 天坪이란 마을이 있다. 안개가 걷히면서 시야가 탁 트이면서 끝 간 데를 모를 정도로 넓다. 咸興 고장의 배도 넘을 것 같이 넓다. 서쪽의 우뚝한 산의 이마는 하늘의 구름에 닿았고 아랫도리는 대지를 따라 멀리 퍼져 갔는데 그 끝 간 데를 모르겠다. 저어리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그 웅장함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백두산 봉우리임을 알만 하다. 다들 일시에 소리쳐 기뻐한다.
서남쪽에는 寶陀山(보타산)이 솟았는데 역시 눈이 그 이마를 가로 덮었다. 어제 甲嶺에서 보면서 “저것이 소백산이로구나” 하면서 아는척하였지만 결국을 잘못 본 것이다. 듣기로 그 봉우리에 오르면 큰 못이 셋 있다는데 올라가면 큰 바람과 우뢰가 몰아친다고 한다.
동령에서 6리 남짓의 大紅丹 개울을 건너 小柳洞, 大柳洞 건 듯 지나 오른쪽으로 鵲峯(작봉)을 끼고 감도니 벚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바라다 보니 흰빛이 가득한 것이 큰 저자거리에서 흰옷 입은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비며 왕래하는 것 같아 장관이다.
대홍단에서 半橋까지가 5리길인데 반교에 당도하여 점심을 먹었다. 멀리 바라다보니 햇볕을 받아 白頭峯이 빛나는 자태인데 玉으로 조성한 웅대한 탑이 층층이 솟아올라 하늘을 치받고 있는 듯해서 그 웅장함이 가이 없다. 여기서 부터는 삼나무 전나무가 무성해서 그 사이로 봉우리를 보게 되는데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이루고 있다.
金元之가 말한다. “여기가 이렇게 평평하지만 백두산에 가까우니 다른 모든 산봉우리들 보다 더 높다”고 한다. 城主가 이를 받아 “비유한다면 임금님 寢殿이 넓고 평평하지만 그 방바닥은 퇴보다 높으니 퇴가 침전 방바닥 보다는 낮지만 뜰 보다는 높은 이치나 마찬가지이지요. 여기는 백두산의 退마루 격이니 지금까지 우리가 올라온 저 지대는 마당이나 담 밖의 들이나 마찬가지라 비유 된다”고 말하였다.
半橋에서 5리쯤 가니 세 봉우리가 있다. 三台峯이라 한다. 나무들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배배꼬였다. 주변엔 풀도 자라지 못하는 것 같다. 들판은 멀리 하늘에 닿을 듯이 아득하여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이 없다. 여기 작은 나무들은 꽃이 다닥다닥한데 철쭉이라 부른다.
남쪽으로 25리쯤 가니 한 길은 보타산 아래로 내려가게 되고 서쪽으로 꺾이는 길에서 10리쯤 가니 貴隴所(귀농소)가 있고 거기를 지나 4리쯤 더 가니 비로소 三池에 당도한다.
삼지는 못이 셋 나란히 잡았는데 첫째 것은 둘레가 4,5리 정도이고 두 번째는 수백보에 불과하고 세 번째 것은 둘레가 근 10리나 되겠는데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한 중에 연못가로는 늙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나무그림자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잔잔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또 못가에는 군데군데 바위와 백사장이 있어 그윽하며 티 한 점 없이 맑아 더 할 나위 없는데 서쪽으로 언덕이 불쑥 솟아올라 섬처럼 되어 있다.
“천하에 神仙이 없다면야 말할 것 없으나 만일 있다면 바로 여기 있다고 할만 하겠네”
城主가 우리들을 돌아다보며 찬탄을 한다.
우리들은 북쪽으로 돌아가서 둘째 못과 셋째 못 사이에 幕을 세웠다. 여기가 서남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시작되는 甲山의 통로인데 5리쯤 가명 虛項嶺이 있다.
長坡로 부터는 山虻(날벌레)이 어찌나 덤벼드는지 계속 부채를 휘둘러 쫓다보니 팔에 힘이 다 빠지고 말았고 金元之는 장막을 뒤집어쓰고 벌레의 공격을 피하였었는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한결 덜하여졌다. 높으면 기온이 차지므로 벌레들 극성이 덜해지나보다. 여기는 이제 배꽃이 피었고 진달래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풀은 마른 것들이 많았다. 아마 서리가 내렸을 것이라고 全通成은 말한다.
올라오면서 留憩院(휴게원)에서 총소리를 들었다. 鏡城, 富寧, 茂山 고장의 포수들이 사냥하는 소리라 한다. 여기 三池에서도 총소리가 난다. 갑산의 포수들아 쏘는 총소리라고 全通成이 알려준다. 전통성은, 노루와 사슴들이 더울 때는 백두봉에 올라 큰못의 물을 마시는데 天池는 둘레가 모두 石壁이어서 드나들기 어렵지만 단 한곳만은 조금 트여 길이 생겨서 노루와 사슴들이 드나들므로 사냥꾼들이 그 길목을 지키다가 사냥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 날은 89리를 걸었다.
22일 癸酉. 맑음. 일찍 일어났다. 짙은 안개가 못에서 피어오르더니 못 전체를 뒤덮는다. 그런 중에 해가 솟자 안개는 어느덧 스러지고 물은 다시 거울 같이 맑아 나무 그림자가  아련하다. 그런 중에 또 한 가닥의 안개가 한 줄기 지나가자 바람이 건 듯 이를 말아서 휘날려 버리고 만다. 놀랍고도 신비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북쪽으로 25리 가면 泉水洞이다.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나무들은 울울창창하고 이끼나 꽃들이 탐스럽다. 다시 북쪽으로 10리를 가니 泡石洞인데 속칭하여 東石洞이라 한단다.
골짜기 따라 서편으로 올라가니 축축하게 물이 배어 있는데 물기는 땅으로 스며들어서 흐르지 않고 泡石들만이 깔렸고 天坪에서 부터는 흙은 보이지 않고 돌만이 눈에 뜨일 뿐이다.
말에서 내려 서서히 걸어갔다. 趙첨지도 말을 먼저 보내고 나를 따라 걷는다. 한참을 더 가서 계곡이 끝날 무렵에 白頭峯 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목들은 키가 낮은 앉은뱅이로 바라다보는 데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추위가 심하게 엄습해 와 덜덜 떨릴 지경이다. 언덕 밑으로는 쌓인 눈이 하얗다. 내일 정상에 오를 예정으로 오늘은 월지봉에 가서 幕을 치기로 하였는데 당도해 보니 언덕 위에 기둥을 세우고 막을 친 곳이 있었다. 사냥꾼들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全通成은 알려준다. 이 날은 55리를 걸었다.
등산하면서 길을 알 수 있는 路記를 휴대하고 와 수시로 참고하였는데, 더러 里數가 달라 참고하기 어려운데 金元之의 路記(주: 등산지도)는 비교적 정확하여 틀림이 없었다. 이 노기는 澹窩선생이 壬戌에 王命을 받잡고 咸北에 왔을 적에 선생 스스로 甲山에서부터 무산을 거쳐 白頭山에 올라 두루 살피고는 茂山사람 白贊龜를 시켜 측량하여 만들게 하였던 것이어서 그 路記는 정확하였다.

22일의 일기는 이로써 끝이고, 이어 23일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리도 잠시 쉬었다가 다음에 또 읽기로 한다. 아직도 5월 말일 까지의 일기가 남아 있으므로 즐겨가면서 쉬엄쉬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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