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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이야기는 그쯤 해두었다가 이후에 사람들이 많이 갈 때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금년에도 여름에 많이들 다녀왔을 동해안 이야기를 朴琮선생이 1767년에 구경하고 다니신 기행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한다. 39일이나 걸린 긴 여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기록하신 글인데 우리도 잘 아는 고장 몇 곳을 두루 따라나서 본다.

鏡  浦  臺    
강릉 북쪽으로 10리, 바다를 끼고 초원이 전개되었는데 초원 사이에 푸른 호수가 있으니 곧 경포이다. 이 호수는 산을 끼고 外湖와 內湖로 나뉘었다. 그러나 외호만을 볼 때에는 내호가 있는 줄을 알기 어렵다. 외호를 낀 언덕 위의 정자를 경포라 하는데 이 정자에 오르면 멀리 트인 전망으로 가슴이 저절로 넓게 트인다.
외호 정자의 짓고 수리하는 일은 전적으로 관에서 하였으며 걸려 있는 현판에는 肅宗大王의
御製詩와 栗谷 李珥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율곡의 글은 그의 나이 10세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생의 德業의 자초지종이 이 글에 잘 담겨져 있다고 할 만 하다.
그 중의 “현달하였다고 즐거울 것 없고 막혔다고 해도 슬퍼할 일이 아니다. 道를 따라 나갈 수 있고 하늘을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엎드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니 하늘과 사람들의 흉을 면할 수 있을 만 하다.”는 글귀는 그야말로 그 분의 성인다운 바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만 하겠다.
내호의 湖海亭은 짓고 가꾸는 일을 대개 선비들이 하였다. 삼연 김창흡은 일찍이 제자 몇몇과 더불어 이 정자에서 周易을 강론하였다 하며 정자의 현판에는 민섬촌이 쓴 정자를 중수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하략-

竹  西  樓
삼척군 서쪽 거대한 절벽이 강을 위압하는 듯이 솟았는데 그 위의 지은 정자가 죽서루이다.
냇물은 太白山에서 50굽이를 감돌아 와서 五十川이라 부르며 물은 맑고 절벽을 끼고 흐른다. 다락에 올라 난간에 기대서 보면 반공에 있는 듯 한데 냇물은 저 아래로 흐르고 있어 그 그림자가 파란 물결에 잠긴 듯이 보인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고기 떼는 백, 천으로 무리지어 떠돌고 있어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가까운 마을의 집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감돌고 있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들은 가물가물 어렴풋이 보이니 다락에서 바라다보는 경치가 실로 關東의 제일이라 하겠다.
현판에는 숙종대왕의 御製詩와 李栗谷과 權石洲 등이 쓴 詩들이 있다.
죽서루 남쪽으로 燕謹堂이 있는데 그가 올라앉은 석벽이 강가에 臨하기는 한결같으나 한편의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있어 죽서루 보다 아늑하다.

洛  山  寺
襄陽府 북쪽 10리에 있다. 산은 설악산의 한 줄기로 내려오다 바다에 이르러 멈추었다. 북쪽으로 등을 지고 남쪽으로 아늑하게 퍼졌는데 절이 여기를 터로 잡았다. 형국은 마치 용과 호랑이가 도포자락을 감싸듯이 하였으니 또한 기이하다 하겠다.
길을 따라 소나무와 고목사이로 들어가다가 우뚝 서 있는 虹霓門을 보게 되며 문안으로 수십보 들어가면 下脫門, 曹溪門, 天王門의 三門이 있다. 문안에 들어가면 正趣殿이 있으니 여기에 觀音大佛을 모셨으며 그 뒤로 담이 둘러 있고 층층계단이 높게 들어서 전각이 된 것은 圓通寶殿이니 여기에는 큰 부처 둘과 작은 부처 둘이 있는데 9층석탑이 있는 뜰의 왼편에는 응진전이 있으니 여기에는 釋迦佛 하나, 보살 둘, 나한 열여섯, 使者佛 둘을 모셨으며 뜰 오른편에는 龍船殿이 있으니 여기는 御牌를 봉안하였다. 이는 다 供殿으로 대단히 장엄하다. 화려하기로는 원통전이 으뜸이다. 堂은 담 밖에 있는 것이 좌편에 넷, 우편에 세 개인데 각각 이름이 있다. 이들은 다 僧房으로 방안에는 각기 작은 부처를 모셨다. 그리고 반야문의 좌우에는 賓日, 送月 두채의 승방이 있는데 오가는 빈객을 접대하는 곳이다.
동쪽 승방에는 肅宗의 御製詩를 붉은 비단으로 덮었으며 澤堂 李植과 간이 최립의 시도 있다. 난간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면 萬里蒼海가 한눈에 들어오며 해와 달이 떠오르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절에서 東으로 7리, 바다에 임한 寶陀窟이 있다. 석벽이 파져 생긴 굴인데 깊이가 천 길이나 될 듯이 까마득하며 짧고 긴 기둥을 石面에 세워 지은 누각은 굴을 가로질러 세웠는데 거기에다 觀音像을 안치해 두었다. 바다의 파도가 석벽을 치고 굴속을 뚫고 들어오니 그 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어 우뢰 소리가 들리는 듯 누각은 그 위에 떠 있으되 물보라가 솟구쳐 창에 훝 뿌리니 굽어보면 잔뜩 겁이 난다.
곁에는 한 작은 암자가 있어 한 사람이 지키는데 하루 여섯 번 공양을 할뿐 다른 이들과 만나지 않고 다만 그 스님은 松茶만을 마신다. 그이와 말을 해보니 비록 불경과 불법에 정통하지 못하다 해도 정신이 맑고 눈이 밝은 것으로 보아 禪에 깊숙하게 들어간 듯 하다.
松茶를 마시어 보니 상쾌하기가 뼈 속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낙산사의 기록을 살펴보니 신라의 義湘祖師가 齋한지 7일 만에 관음보살의 念珠 한 알, 동해 용왕의 여의주 한 알을 받고 또 齋한지 27일에 관세음보살을 굴속에서 친견하였는데 “두 대나무가 솟아오르는 곳이 부처의 땅이니 거기에 법덩을 짓고 공양하라”하였다. 그에 따라 전당을 지으니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 자리이다. 퇴 아래에 대나무를 심어 이를 표시하고 탑 속에 염주와 여의주를 넣었다 한다. -하략-

불에 타서 자취만 남긴 오늘의 낙산사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매우 흥미가 있다. 朴선생께서 다니신 다른 곳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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