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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이래 오랜세월에 걸쳐 사진을 찍어오신 우리 김대벽金大壁 사진가의 서재에 보관되어 있는 수 많은 자료에는 우리 민속과 연관된 자료가 무궁한데, 그 중 천연스러움을 지향하는 우리민족의 활달한 마음이 담긴 바위문화의 자취들도 허다하다고 할 만큼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 심성에는 바위가 멋지고 좋은 산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순례하는 일종의 버릇이 있다. 바위에 부처니을 새긴 마애불을 봉안한 절이 이웃의 다른 절 보다 드나드는 신도들의 수가 많다는 통례를 통해서도 우리들 마음에 바위를 좋아하는 심성이 간절함을 알 수 있다. 그런 바위를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고 한번은 다시 한번 보거나 쓰다듬으며 지나치는 마음이 보통이다.

할머님들께서는 마을 어구에 있는 잘 생긴 바위에 치성을 드리기도 하셨다. 그 바위의 생김이 사람을 닮거나 하였으면 더구나 존경을 받았다. 할아버님들은 돌장승을 만들어 세우며 든든해 하셨으며 부모님의 무덤 앞에도 돌로 인물상을 새겨 세우고는 대견스러워 하셨다.
그런 장승들은 여무지고 똑똑한 모습이기 보다는 어리숙하고 힛쭉 웃는 수더분한 표정이어야 더 다정스럽게 여기며 함께 지내기를 즐거워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잘생긴 바위에 사람 머리 형상을 닮은 작은 바위를 올려다놓고는 그것을 장승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천연의 바위에 인공을 더한 일인데 이런 합작을 통하여 자기의 심성을 발휘하였을 뿐이나 지나치는 사람들의 찬탄을 들으면서는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긍지를 느끼며 환호를 한다. 결국 천연의 바위와 인간과의 합작이 이루어낸 문화가 찬탄讚嘆의 공감대 共感帶를 형성한 것이다.
그런 작품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 잡고있는데 그 형상도 갖가지로 참으로 다양하다.
그들 적품 중에 안동 제비원의 돌부처님처럼 천연의 거대한 바위 위에 사람이 새긴 머리를 얹어 합작한 예도 있어 유명하다. 이런 천연바위와의  합작의 心性을 나는 “바위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천연스러운 바위 둘이 나란 한 것을 눈여겨 본 한 재주꾼이 바위 생김에 따라 다른 형태의 얼굴을 만들어 올렸다. 그 作風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아들 점지해 주기를 비는 신앙이 바위를 감싸게 되었다. 서울 서북부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또 다른 장소에는 삼각산三角山 줄기의 한 바위에 마애불을 새긴 신라사람들의 솜씨가 빛나고 있어서 서로 자기 특성을 발휘하고 있다. 지극히 정교한 작품과 천연스러운 바위와의 합작품이 이룩한 성과의 對比이기 때문이다. 이런 바위와, 그 바위를 대상으로 삼은 인간의 심성도 역시 바위문화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찾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양한 바위문화의 작품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 어른들께서는 바위를 깨트려 작게 만들고서는 거기에 여러 가지 형상을 조성하여 또다른 문화자취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우리 김대벽 사진가 어른의 안목으로 촬영하여 수집한 자료만 해도 놀라울 정도의 수에 이르고 있고 그 형상들이 매우 다양하다. 그런 다양성 중에서도 한 가지 소재를 응용하여 갖가지 작품을 조성한 사례도 있어서 이 바위 작품들을 수집한 자료를 분류해 보면 무릎을 칠 만큼 우리를 놀라게하고 감탄스럽게 한다.

이번 한옥문화원에서는 그들 자료 중에 “돌 거북이”만을 골라 특집호를 만들 차비를 하고 있다. 아마 이들 자료를 보면서 놀라움에 감탄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美術史나 한국 彫刻史 등에서는 이들 천연스러운 작품이나 여러 유형들의 속내를 볼 수 있는 역대의 이들 작품을 거의 언급하지 않아 소외되어서 우리들 눈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칫 남의 식견에 따라 자기의 것을 탐구하는 버릇이 있는 듯 하다는 자괴감이 있다. 일본인들이 광복 이전까지 취급하여온 한국문화사나 미술사의 안목을 지금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로 인하여 내 것을 바로 보는 노력이 그만큼 부족하였고 그래서 우리가 새롭게 제창하는 바위문화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단계의 수준일 뿐이라고 해도 좋을 만 하다.
그간 마애불 등의 탐구로 일부의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은 불교조각으로서의 접근 방법에 충실하였을 뿐이지 천연의 바위를 우리 사람들의 안목과 재주가 어떻게 발휘되었는지에 관하여는 거의 무시하거나 置之度外하고 말았다.

한옥문화원에서는 이 ‘바위 文化’를 통하여 우리 사람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천연의 바위와 인간이 합작한 예로부터 시작하여 아주 작은 돌맹이를 다루어 우리가 소용하고 싶은 알맞은 것들을 만들어낸 心性에 이르기까지를 탐구할 수 있다면 최상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이는 어느 특정인의 사고방식이나 학문의 방법론에 국한 시킬 일이 아니다. 이름 없는 우리 어른들이 작품을 의도하며 만든 것이 아닌 바에는 우리들 후손들도 무슨 특정학문을 이수한 격이 있는 학자님들에게만 위탁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여 만든 분들의 질박한 심성처럼 우리들 마음을 자극 하는 그 고동소리를 정리하여 충분히 상호 탐구하면 그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우리 어른들의 그 소탈한 심성과 결과 된 작품들을 충분히 선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의 「韓屋文化」를 통하여 그들의 존재를 익히기 시작하면 주변의 흩어져 있는 새로운 자료들을 눈여겨보게 될 터인즉, 여러분들의 새로운 자료가 다시 모인다면 다음에 따로 또 자료집을 만들어 보충해 나가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아 여러분 우리 다 함께 이런 즐거움도 누리면서 우리 어른들께서 이룩하신 놀라운 업적을 찬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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