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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平君 洪의 建築觀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동평위 부마의 『東平尉公私見聞錄』에서 흥미 있는 부분을 발췌하였다.


종실(宗室)의 완평군은 이름이 홍이요 덕흥(德興)대원군의 증손(曾孫)이다. 어려서부터 집 짓는 일에 재미 붙여서 백발이 될 때까지 집 짓는 일에 종사하였다. 종친간이나 고관들이 집 지을 때는 완평군을 불러다가 배설(排設)하는 법을 물어서 하였다. 완평군이 어릴 때에는 먼저 안채의 자리를 정하고 다음에 사랑채와 뒷간 그리고 노복들의 방 등을 정하였다. 중년에는 먼저 사당 등의 위치를 정하고 다음에 안채와 사랑채의 터를 잡게 하였다. 말년에 가서는 먼저 뒷간의 터를 정하고 다음에 사당 자리를 정한 후에 몸체와 사랑채 자리를 정했다. 사람들이 그의 전후소견(前後所見)이 같지 않음을 책망하여 물어보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사람 사는 집에는 반드시 뒷간이 될만한 터가 있어야 한다. 뒷간이 정해져야 어려운 근심을 없앨 수 있다. 세상에 오래 살면서 경험을 많이 해보니 보는 지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였다. 듣는 사람이 완평군은 집 짓는 이치에 투철하다고 인정하였다. 완평군은 금상(숙종) 계유년에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기록을 나는 전에 모르고 있어서 『한국의 살림집』에 인용하지 못하였었다. 이번 새로 자료를 더하고 틀린 것을 고쳐 새로 쓰는 『새로 쓴 한국의 살림집』개정판에는 반드시 인용하여 완평군의 일가견을 선양하려 한다.  


金震發은 말의 鑑識人이다.

김진발은 옥천에 사는 맹인이다. 병오년간에 현종(顯宗)이 장열(莊烈), 인선(仁宣) 두 대비마마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진발이 퉁소 부는 사람으로 서울에 왔다. 사람들이 그가 말의 관상을 잘하는 상마(相馬)의 달인이라 해서 그를 불러 실험을 하였다. 진발이 손으로 말을 어루만지더니 그 말의 나이와 잘 달리는지, 못 달리는 지와 둔한자 아닌지를 조금도 틀림없이 알아 맞추었다. 또한 말의 종자에 대하여서도 달마새끼인지, 제주도 말인지, 택마(澤馬)인지, 향마(鄕馬)인지를 모두 똑똑하게 알아 맞추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사람들이 몰래 진발의 말 안장을 풀고 말고삐를 바꾸고 여러 말 사이에 갖다 놓았더니 진발이가 쉽게 자기 말을 잡고 쓰다듬어 주면서 "어찌 나를 속이려 하느냐"고 웃으며 "내 말은 이 말이다"라고 알아차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면서 말 귀신이 붙지 않았느냐고 의심을 하였다.


김진발 맹인은 눈 먼 분이지만 감식 능력이 달인의 경지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반드시 눈이 아니어도 감식할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에 얼마만한 노력이 경주 되었겠느냐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도 느껴져서 노력하고 사는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한옥 탐구에서 木壽도 저런 경지에 이르렀을까를 되새겨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선인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찬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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