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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를 올린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伯德齋 일로 강원도 평창엘 다녀와야 하였고 불란서의 파리로 가서 고암서방顧菴書房(이응로 화백 미술관, 미망인 朴仁京화백의 主管으로 지어진 한옥)의 오늘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하고 11월 13일에 귀국하고는 14일에 강화의 學思齋에 가서 선비골(학사재의 마당 꾸민 일대의 이름) 준공의 모임에 다녀오느라 이렇게 뒤늦게야 90화를 올리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파리의 고암서방은 파리시내에서 약 40분쯤 떨어진 보수센이란 마을에 있는데 쎄느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한옥의 규모는 1간반통의 5간 규모인데 부엌 2간이 ¬자로 꺾인 위치에 있다.
1992년 6월에 상량을 하였다. 木壽가 指諭를 하고 曺喜煥(作故) 도편수가 여러 大木들과 더불어 완성한 건물로 기와를 이은 작은 기와집이다. 이 집 지을 때 건축자재를 주문해다 쓰는 집에서 처음에는 Korea hause라고 청구서를 보내더니 기와지붕이 완성될 즈음에는 Korea palaces라는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 눈에 그 집이 그만큼 우람해 보였나 보다. 그 마을의 집들은 밖에서 보면 삼각형 지붕의 뾰죽한 부분이 보여서 집의 규모가 넓어야 2간 정도이므로 크고 우람하게 보이지 않는데 우리 한옥은 날아갈듯한 기와지붕에 5간을 전면에서 바라다보게 생겼으니 자연히 크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지은 지 12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덧문과 덧창과 미닫이에 창호지를 발랐더니 작은 새가 날아와 창호지를 쪼아댄다. 풀 냄새가 유혹을 하였는지 한지가 새들을 끌어드렸는지는 물어보지 못해 알 수 없으나 그 녀석들이 힘껏 쪼아대는 통에 한지에 구멍이 빠끔빠끔 뚫어져 가관스럽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도리 없이 다시 가서 유리창을 달아 주었더니 미닫이는 보호되나 밖의 여닫이는 공격을 막을 길이 없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아 몇 번이고 창호지를 바꾸어 붙여보나 속수무책이어서 한동안 그냥 두는 수 밖에 없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에 갈 때는 창호지를 대신 할 수 있는 불투명 흰색 자재를 들고 가서 바꾸어볼 작정을 하고 있다. 그래야 여닫이가 온전히 견디어낼 것 같다.
풍토가 다른 고장에 한옥을 지으려면 그 고장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한다는 한가지의 경종을 그 작은 새들이 일깨워 준 셈이다. 아주 비싼 경험을 하였다.
소나무 맛을 보는 벌레가 달라붙어 왕성한 식욕을 발휘한다는 소식이 왔다. 그 벌레들도 이웃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소나무에 매력을 느꼈나 보다. 이번에 가서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하여 자세히는 알가 어려우나 개미보다는 벌처럼 생긴 녀석인 듯이 느껴지는데 전문가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확정하기가 어렵다. 어찌하였든 이 녀석들도 쫓아내야 할 일이어서 소나무에게 약을 먹이는 수 밖에 없을 터인데 현지에서 그 방면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그 녀석들이 아직 깨끗이 물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와를 이으면서 주변에서 나는 흙을 바닥 흙과 홍두깨흙으로 사용하였다. 그 나라 건축가의 조언을 듣고 안심하였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그 흙이 다 흘러 내려서 수기와가 암기와 위에 그냥 엎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잡아주는 흙이 없으니 더러 흘러내리기도 하였다. 아구토를 해서 단단히 물려주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볼 뻔 하였다. 당장 고쳐야 하겠다.
역시 풍토가 다른 고장에서 그 지역의 用材에 익숙지 못하였던 데서 발생된 결과이므로 집을 모르는 고장에다 짓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는 점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다.
며칠 묵고 있는 중에 불란서에서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한옥에 관심을 둔 우리 학생들이 顧菴書房으로 찾아왔다. 한옥문화원과의 인연이 있는 이들이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번 기회에 고암서방도 한번 보고 싶다고하여 반갑게 만나고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불란서와 독일 대학에서 건축을 강의하시는 교수님들 중에 동양건축에 관심을 둔 분이 여러분이고  그 중의 몇 분은 일본에 여행하고 일본건축 자료를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알려주시기도 한단다. 그 어른들에게 왜 한옥에 대하여 강의하시지 않으시냐고 여쭈면 아직 접근할 기회가 없었다고 하신단다. 한 사람은 그간 우리나라에서 유학을 오셨던 선배 분들이 어떻게 힘을 써서 그 어른들에게 자료를 드렸으면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을 터인데 아쉽게 되었다고 입맛을 다신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착실히 한옥을 알려드리고 그 분들이 한국에 다녀갈 수 있게 마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격려를 하였더니 그러면 한옥문화원에서 기본 자료와 초청하는 사업을 마련해 달라고 오히려 덮어씌우려 한다. 한옥문화원이 그만한 재력을 갖추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할만한 일인데 싶으나 아무 말 하지 않고 웃고 말았다. 왜 그리 뒤통수가 가렵던지.
우리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어서 커야겠다. 연구비며 장학금까지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착실히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공과대학 건축과에서 한옥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을 외국인 교수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그 분들이 어느 대학에 와서 한옥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어느 대학을 소개해 주어야 하는 지는 우리끼리라도 미리 의논을 해두어야 하지 않겠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낭패를 보지 말아야 나라 체면도 서고 우리 문화의 격이 망신을 당하지 않을 때 그들을 받아드려야 차질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은 어쩌다 그 쪽에 다녀오는 木壽 같은 이 보다는 교육을 맡아하시는 분들이 염려하실 일이란 생각이 들어 유학생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였더니 딴은 그렇겠노라고 공감 하면서 곧 오시는 분을 뵐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건의해 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 대신 내년에 顧菴書房을 수리하러 올 터이니 그 때 현장에 와서 도우면서 교수님을 모셔다 함께 보면서 접근하면 어떻겠느냐고 동행한 李廣福 도편수가 말을 거드니 그들은 반색을 하면서 내년 일에 꼭 참가하겠고 관심이 깊으신 교수님을 초빙해서 한옥을 實見하시도록 권해 보아야겠다고 하면서 신이 나서 작별하고들 떠났다.
집 주인께도 이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반색을 하신다. 고마운 일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으면 귀찮기도 하시련만 그런 것 보다는 내 문화를 남에게 신나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고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신다. 木壽와 廣福 도편수는 감격스러워 크게 인사를 드렸다.
이제 한옥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에 그만큼 확산되고 있다는 증좌일 수도 있고 한옥의 우수성이 구라파에도 차츰 번지기 시작하였다는 기미일 수도 있다.
玄岩社에서 출판한 木壽의 책 <우리 한옥>이 구라파에서도 적지 않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제 한옥문화원에서도 機關紙인 <韓屋文化>를 그 지역으로도 널리 펼 필요가 있음을 감안하고 外國語로 간행할 준비를 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어느 분이 좀 도와서 번역도 하고 간행도 거들어 준다면 신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싶은 생각을 하면서 귀국하는 비행기에 앉아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세상 일은 뜻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격언이 있었지 않았나. 여러분들 생각을 어떠신가요. 우리 다 함께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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