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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 등이 따스할 정도의 햇볕이 내려 쪼이고 있다. 어제만 해도 강풍이 대작하면서 음습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청천백일이다. 집을 나서다가 다정한 햇볕을 만나니 눈이 부신다.

이 집 지은 사람의 몰신경한 점이 얄밉게 느껴진다. 어쩌자고 이 좋은 햇볕을 받아드릴 수 없도록 얇은 경철판으로 벽체를 하고 두꺼운 철판으로 문짝을 달아 밀폐하여서 첩첩이 가리도록 철저히 방어의 집을 지었을까. 유지관리에는 편할지 모르나 사는 사람의 정서는 완전히 무시하였다. 역시 집장사 집의 얄팍한 상혼이 그렇게 발휘되나 보다.


탁트인 한옥이 그립다. 역시 사람 살만한 집이지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오르는데 자전거가 아뿔사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平城京의 궁궐인 평성궁앞 朱雀門 앞으로 트인 길로 접어들고 있다.

보통은 문의 안쪽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달리게 마련인데 오늘은 주작문을 밖에서 바라다 보면서 들어가게 되었다. 늘 그렇지만 바람이 부는 날 주작문에 달린 풍경소리는 양철통을 긁는 것 같은 기분이 좋지 않은 소리를 낸다. 모양 만이지 소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나 보다. 지금의 일본 풍조가, 만들어 내는 일에만 급급하지 그 건축물의 중건이 옛날 기법을 충실히 하느냐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원초시대 움집을 재현하면서 철사로 묶은 무신경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정도이기도 하다고나 할까.


주작문의 비례도 어설프다. 우리 남대문이나 서울의 창덕궁 돈화문 등이 지니고 있는 2층 重門에서 1층과 2층의 비례가 아주 다부진 점에 비하면 2층이 너무 높아 보인다.


우리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도 서울 숭례문이나 마찬가지로 아랫도리가 큰 훤칠한 모습이다. 평성경을 경영하던 시대라면 우리 사람들의 건축가들이 활약하던 시기이니 당연히 고구려형의 비례를 지닌 문이 조영되었을 터인데 완전히 일본식의 감각으로 중건하고 말았다.


자전거가 어느덧 공원 가운데에 이르렀다. 한 동안 만발하던 붉은 색 동백꽃은 시들어지고 지금은 매화가 한참이다. 세월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지난 설에 잠시 귀국은 하였으나 여러분들 찾아뵙고 세배드리지 못하고 바로 다시 건너왔다. 부산MBC의 박명종부장에게 잡혀 창덕궁 낙선재와 연경당을 찍고,  EBS를 따라 맹씨행단과 윤증선생님댁을 순방한 뒤에 양평의 상곡당에 들러 21세기 한옥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울 체제기간을 다 까먹고 말았기 때문이다. 인사드리지 못해 대단히 죄송스럽다는 인사를 드려야겠다.



내일 모레 토요일에는 다시 바랑망태를 지고 명산대찰을 찾아 나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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