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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재목들이 있어 경복궁 근정전이나 경회루 혹은 창덕궁 인정전과 같은 대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궁금한 일이다. 지금 같으면 30자(약 10m) 길이의 재목조차 구하기 힘들어 외국수입목재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인정전만 해도 대들보가 40척이 넘어야 하였을 터인즉 지금 같으면 우리나라 목재만으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지경이다.
철종 5년(1854)에 착공하고 중지 하였다가 8년(1857)에 준공한 인정전 중수공사가 진행되었었는데 그 공사에 투입된 목재를 기록한 <인정전중수의궤仁政殿重修儀軌>라는 중수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단한 목재들이 공급되고 있었다.

下層
高柱(고주) 十箇(10개) 各長(각각의 길이) 四十六尺(46척, 영조척 _창덕궁에서 쓰던 자_ 1척 길이 30.56cm) 末圓徑(재목의 제일 가는 부위의 지름) 一尺八寸(1.8척)  -이하생략-

이들 목재를 공급하기 위하여 경남 고성의 섬에서 벌목해 서울로 운반하였는데 그 때 운반해온 재목의 일람표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의 일부만 본다.

大樑 一株 長四十六尺 末圓徑二尺五寸
     一株 長四十六尺 末圓徑二尺四寸
高柱 一株 長四十八尺 末圓徑二尺
耳高柱(귀고주) 一株 長四十五尺  末圓徑二尺三寸

46척과 48척의 재목이 운반되어 왔다. 지금으로서는 국내에서 이런 재목이 공급된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서까래도 아래층에 쓸 긴 서까래는 216개인데 그 길이가 17척 5촌이고 말구의 지름이 7촌이었다. 선자서까래는 96본이 공급되었는데 그 길이는 24척 5촌이고 말구의 지름은 7촌이었다. 요즘의 시세로 비교하면, 12척 원목에 비해 15척 원목의 값은  길이에 비례한 것보다 훨씬 높으므로 17척이라면 상당한 금액을 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정전에 소용되는 목재 값 만 해도 상당할 터인데 당시에는 지방관이 어명에 따라 잘라 올려 보내는 방식이므로 지금과 같은 공사비 계산과는 다르나 벌목하고 옮기는 일은 대단히 수고스러운 작업이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만한 목재가 없다면 앞으로 목조건축은 어찌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제 차츰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규격의 소나무 재목松材을 구할 수 없다면 활엽수 재목으로 대체하는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활엽수의 구조 기법은 소나무와 다르다. 이 점을 우리가 유의해 두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그래서 금년 8월 12일부터 15일까지의 ‘한옥과의 만남’을 대구 화원의 문씨댁으로 정한 까닭 중의 하나가 이 활엽수 사용기법을 접근하는 기회로 삼자는데 있다.
이번 우리들의 만남은 완연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즐거움의 출발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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