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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壽는 은사이신 최순우崔淳雨선생님이 남겨주신 글을 자주 읽는다. 조선일보사에서 간행하는 마음으로 보는 우리문화의 다섯 번째의 책인 <꽃담>을 쓰던 때에도 선생님의 글 ‘景福宮의 옛담장’을 몇 번이고 거듭 읽었다. 오늘도 그 글을 읽다가 그럴 것이 아니라 여기에 옮기고 다들 함께 읽으면 어떨까 싶은 기특한 생각이 들어 아래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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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福宮의 옛담장

  동산이 담을 넘어 들어와 後苑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 산을 바라다본다.
  한국의 후원이란 모두가 이렇게 자연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테두리만을 의미할 때가 많다. 궁전의 후원이나 草堂의 후원들이 대개는 그러하고 또 동산 밑에 자리 잡은 촌가의 뒤뜰이 모두 그러하다. 말하자면 이렇게 자연과 후원을 천연스럽게 경계 짓는 것이 담장이며 이 담장의 표정에는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소박한 토담의 경우도, 우람한 사고석 담의 경우도 모두 地勢 생긴 대로 층단을 지으면서 언덕을 기어 넘게 마련이어서 산이나 언덕을 뭉개기 좋아하는 요새 사람들 생리와는 크게 마음이 다르다.
  지금은 이 담장이 안으로 물러 세워지고 그 자리에 편편대로와 휘황한 가로등이 밤을 낮 같이 밝혀주지만 삼십년 전(木壽의 註: 1950년 무렵)만 해도 景福宮 뒷 담장은 이렇게 태고적 처럼 소슬한 솔바람 소리를 호젓이 듣고 있었다. (木壽의 註: 1950년대 최선생님은 효자동 전차 종점 북방의 宮井洞 북악산 산기슭의 아담한 기와집에 살고 계셨고 木壽와 다른 제자들도 그 댁에서 즐거운 밤을 보내곤 하였었다)
  담장 안은 왕자의 禁苑, 담 밖에는 언덕을 넘어가는 돌대길 돌층계에 푸른 이끼가 마르지 않았다. 크고 우람한 장대석을 두 층, 세 층으로 받쳐 놓고 그 위에 화강암 사고석을 높직이 쌓아 올리는 식의 담장은 한국의 독특한 담장 양식이며, 그 風磨雨洗된 화강석의 야릇한 흰색과 날개 달린 검은 기와 지붕의 조화는 한국 풍토미의 이색적인 아름다움의 하나였다.
  담장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폐쇄적이라고 섣불리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담장이 이루어 주는 희한한 안도감과 아늑한 분위기는 또 달리 맛 볼 수 없는 한국 정서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다지 높을 것도 없고 그다지 얕지도 않은 한국 궁전이나 민가의 담장들에 들어 있는 마음이 숨 막히게 높거나 답답한 공간을 에워싼 중국의 담장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마치 그 속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性情과 중국 사람들의 성정이 다른 것 이상으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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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회화와 도자기를 전공하신 어른이시다. 유물을 살피시는 일에서도 당대 제일의 명인이란 호칭을 들으셨고 많은 분들의 초청으로 전국으로 다니시면서 많은 수장품들을 보셨다. 그런 식견과 노력에서 터득된 말씀을 제자들에게 들려주곤 하셨고 이런 글을 써서 생각하신 바를 알리셨는데, 당시 선생님 글을 연재하던 여성잡지는 다음 달 잡지가 언제 나오느냐는 채근에 시달려야 하였다. 선생님 글씨도 명필이셔서 잡지의 원고를 서로 얻으려고 해서 잡지 출판 후에는 그 원고 간수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소식이 떠돌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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