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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성벽이야기의 계속이다. 중국학자의 글을 다시 인용한다.
국내성과 함게 둘레가 7km 되는 환도산성丸都山城을 축조하였는데 이는 고구려 시대 초기 산성의 전형典形이다. 성은 집안시에서 서북쪽으로 2.5km 떨어진 고산高山 위에 있으며 자연스럽게 산봉우리와 능선에 따라 기초하고 성을 쌓았다.
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배치하는 고구려 산성의 특성을 잘 발휘하였다. 동, 서,  북의 삼면의 성은 반원형인 산 능선에 돌로 성을 쌓았고 밖은 가파른 절벽이고 안쪽은 비교적 넓지만 비탈이 졌다. 남쪽의 성벽은 지세가 비교적 낮은 자리에 쌓았으며 전체적인 성의 배치된 모양은 쌀을 까부는데 쓰는 키를 닮았다. 성벽 높이는 5m 전후이며 다섯의 성문이 있으며 성벽에는 성가퀴가 있다.
영조기술상 성의 동남은 가파른 절벽이어서 그대로 이용하되 조금 사이가 벌어지거나 하였으면  부족한 부분은 돌을 쌓아 보충하였다. 사용된 석재는 반반하며 아래 켜로 부터 위로 점차 크기를 줄였다. 산 능선의 높고 낮음에 따라 성벽 높이를 높게도 낮게도 하여 조절하기도 하였다. 낮고 패인 장소에는 높은 성벽을 쌓았다. 현재 보존된 것은 동벽의 남단, 서 벽의 북단, 그리고 북벽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이 산성의 초기 이름은 위나암尉那巖이며 고구려 제10대 산상왕 2년(198)에 산세에 따라 계속 성벽을 쌓고 성안에 건물을 지었으며 이때로 부터 성을 환도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연대가 환도산성 보다 늦은 산성건축으로는 패왕조覇王朝산성과 관마關馬산성등이 있다.
4세기 이후로 고구려의 힘이 점점 강성해짐에 따라 지형이 험요하고 수륙교통이 발달한 고장마다에 산성을 쌓았다. 현재 보존된 성의 유지遺址는 대화大和산성, 건안성建安城, 백암성白巖城, 신성新城, 서풍자산성西豊城子山城, 오골성烏骨城, 羅通山산
성, 龍潭山 산성등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조사된 산성과 평원성平原城들도 안시성安市城을 비롯하여 상당 수가 전하여 온다.
고구려는 도성都城, 평원성, 산성으로 조성된 성곽체제를 갖추었다.
---중국의 한족들에게는 산성의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발해가 망하자 요나라가 발해의 각종 성을 이용하였고 금나라에서도 그렇게 하여 이들의 터전에서는 각시대의 유물이 수습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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