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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시간이 나서 전에 읽다 두었던  <東平尉公私見聞錄>을 잠깐 보았다.
더러 요즘 발굴이니 하는 소식을 듣는다. 이 책에도 도굴로 부자가 되었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흥미 있게 읽었다.

한 종실의 후손이 과천 땅에 살았다. 때꺼리가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런 중에 초상을 당하여 멀리 갈 형편도 아니라 가깝게 땅을 파는데 뜻밖에 묘지석墓誌石이 나오는데 보니 고려때 왕자님의 묘자리이다.  더 파내려가니 여러 부장품들이 나오는데 다 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금을 파내어 집에 옮겨 오니 당장 부자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루는 집의 노비가 도망을 가서 잡으러 전주에 까지 갔다. 저녁 때가 되어 남의 집에 기숙하였다가 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뒤뜰에 나가 소피를 보는 중에 화살이 날러와  맞아 죽었다.
사람들의 숙덕공론으로는 도망간 노비가 활을 쏘아 그 주인을 죽였을 것이라고도 하고 또 묘에서 캐어낸 금덩어리에서 탈이 났다고도 하였다.
같은 고을에 함께 살던 이가 와서 전한 이야기인데  병자호란 이전의 일이라 한다. 이 종실 사람은 풍수설에 능하여 임금닌 능침 잡는 일에도 관여하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알고 팠다는 뜻도 되겠는데, 이런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도굴이 얼마나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짓이냐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당나라 군인들이 고구려왕릉을 무단발굴하여 금은보화를 수없이 싣고 갔다는 소식에서 다시 도굴의 폐해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고구려의 찬연한 문화를 우리는 좀 더 충실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깝고도 아까운 일이다. 홍위병난리 때에 발해왕릉과 고분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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