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사랑방 이야기 제18화

by 신영훈 posted Aug 30, 200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역시 박종(朴琮)선비의 유람을 따라가며 그의 견해를 들어본다. 이번엔 우리도 강릉에 가면 들르는 경포대로 가본다.


경포대(鏡浦臺)

강릉부에서 북으로 10리, 바다까지 평탄한 초원을 사이에 두고 푸른 호수가 있는데 곧 경포이다.

경포에는 산이 서편으로부터 바로 경포의 허리로 들어와서 호수가 끝난 데에서 다행히 연결되어 있다. 산의 남쪽에 평평하고 둥근 것이 한 구(區)를 이루니 이를 외호(外湖)라 하고 산의 북방 평평하고 둥근 한 구를 내호(內湖)라 부른다.

외호를 볼 때에는 내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절벽에서 외호를 누르고 서있는 정자를 경포대라 하는데 오르면 전망이 멀리 터지도  가슴이 훤하게 스스로 트인다.

봉우리 기슭에서 내호를 굽어보고 서 있는 정자를 망해정(望海亭)이라 하며, 여기에 오르면 아늑하고 그윽해서 정신이 안정되니 이것이 각기 구를 구별하여 서로 정취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산의 모습과 물빛, 안개와 구름, 풀과 나무, 모래 언덕과 물새가 노는 경관은 대개 같으나 그 규모에 있어 내호는 작고 외호는 크다.

아득히 바다 멀리 하늘 끝에 돛단배가 석양을 가로 띠고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다보는 맛은 내외호가 다 같으면서도 호수가 바다와 서로 마주 대하고 서로 이웃한 점으로는 내호가 외호 보다 낫다 하겠다.

외호 정자(경포대)의 창수(創修)는 모두 관아에서 하였으며 현판에는 숙종대왕의 어제시(御製詩)와 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서문, 이 서문은 율곡이 어려서(10세) 지은 것으로 선생 덕업(德業)의 처음과 끝이 여기에 간직되어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장주도 내가 아니오, 나비도 物이 아니라, 진실로 꿈도 참도 없다. 範이 망하지 않고는 楚나라도 있는 게 아니다. 얻고 잃은 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 한 句는 이미 금강산에 들어가서 수학한 저의를 말한 것이고, 「현달했다 해서 즐길 것 없고 막혔다고 해서 슬퍼할 게 없다. 거의 도에 나갈 수 있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엎드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니 가히 하늘과 사람의 흉을 면하겠다.」 이 한 귀는 聖人의 저의, 그리고 「융의 나라에 누운 용과 위천의 어부가 비록 명망을 구하는 선비는 아니나 어찌 세상을 잊어버리겠는가」 이 한 귀는 사업의 저의가 나타나 있다 하겠다.

내호 정자(망해정)의 창건과 수리는 대개 선비들이 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흠은 일찍이 제자 몇 사람과 함께 이 정자에서 주역을 강론하였다 한다. 정자 현판에는 민섬촌의 중수(重修) 서문(序文)이 있다. 대개 호수의 승경(勝景)을 논한다면 진실로 절경이어서 치성의 비홍호 보다 그 짜임새는 훨씬 작아도 환경은 대단히 묘하여 동연호(東蓮湖)와는 그 환경에 있어 흡사해도 국면은 그것 보다 크다. 그것과 이것이 가히 백중이라 하겠다. 생각컨데 이것은 이름이 나고 저것은 묻혔으니 이는 하나는 북쪽이 다한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