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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건축

한참 건축과 연관된 책을 읽던 중에 재미 있는 자료를 하나 발견하였다. 1900년대 초엽에 아직 대한제국의 관아이었던 掌樂院이 사용하던 廳舍를 실측하고 도면을 그린 자료를 발표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건물도, 그에 대한 자료도 분명하지 못하여 사라진 건물 중의 하나로만 취급하고 있던 참이라 한국건축사의 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퍽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장악원은 正三品관아로 明禮坊에 있으면서 禮曹에 속하고 從二品의 提調를 책임자로 하는 관청인데 나라 여러 행사에 음악을 아뢰는 일을 주무로 하고 있다. 조선조 초기에는 雅樂署나 典樂署라 부르기도 하였고 세종 때에는 雅樂을 太常寺에 속하게 하고 慣習都監을 열고 음악을 정리하는 사업을 하던 곳이었다. 세조 때에는 樂學과 관습도감을 합하여 樂學都監으로 하였다. 원래는 따로 관아를 갖지 못하였었으나 太常寺에 소속하였을 당시에 餘慶坊 奉常寺 동편에 독립된 관아건물을 마련하였고 후에 명례방에 장악원 건물을 마련하였다.

자료에 실측된 도면은 4매인데 평면과 입면과 단면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정면 5간 측면 2간에 앞 뒤 퇴간이 부설된 본체에 ¬자로 꺾인 內樓가 부설되어 있는 구조인데 본채는 세벌대 위에 반듯하게 올라앉아 있고 내루는 높은 주초석이 듬실한 그런 구조를 하고 있다. 본체는 전체를 개방한 넓이의 대청으로 조영되었는데 7량으로 架構되고 연등천장으로 꾸며졌다.

종묘 구내에 지금도 현존하는 樂工廳이 있는데 거기는 바닥이 맨바닥이어서 여기 장악원의 넓은 대청과는 구분된다. 명례방의 장악원 그 넓은 대청에서는 음악을 아뢰는 奏樂 연습을 하였었나 보다. 내루의 한편에는 작은 방이 부설되어 있다. 제조 이하의 관원들이 座起하던 곳으로 이해된다. 이 자료에는 도면 이외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왜 그런 자료를 그렇게 공표 하였는지와 건물의 상세한 내력이나 규모에 대하여는 별다른 지견을 얻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자료는 일본 동경에서 1890년대부터 간행하여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建築雜誌』제141호에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대한제국이래 조선조의 그 많던 관아건물들을 불하하거나 훼철하여 거의 볼 수 없게 되고 만 딱한 현실로 해서 당시의 관아건물의 실제적인 건축광경을 볼 수 없는 처지에 있으므로 이런 자료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어 여기에 소개해 두려 한다.

어디에서 옮겨갔는지 알 수 없는 건 물 한 채가 가마꾸라시에 있었다. 아주 초라한 위치에서 유현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아무 곳에도 그 건물에 대한 기록이 눈에 뜨이지 않아 빙빙 돌면서 안타까운 정을 나누다 물러서고 말았던 기억도 있다. 여염집 같지는 않고 궁의 한 부속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寢殿의 형상을 많이 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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