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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집 허물고 격구장 건설한 고려 무신

장편의 역사 연극물이 요즈음 한참이다. 고려 개국으로 부터 무인들의 중방정치에 이르는 내용이 방영되면서 고려사회에 관심을 두고 그 때의 집이 어떠하였느냐고 묻는 이들도 더러 있다.
고려사 열전列傳에는 역사에 행적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의 일대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몽고와의 항쟁에 기여해 유명한 武臣인 崔瑀는 자기 집에 격구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주변의 살림집 100채를 강제로 철거한다. 그이 집은 굉장한 규모여서 방안에서 그네를 뛸 정도였다고 하며 잔치를 한 번 푸짐하게 벌리면 그 준비나 장식이 엄청났었다고 고려사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흔히 우리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건설된 집들 처럼 작은 집에서만 살아온 백성들로 여기는 상식들이 꽤 많이 횡행한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래로 상당한 규모가 있어 신라 통일기의 한 각간의 집은 사병을 5000명이나 거느리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병력을 다 한 집에 거느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각간의 집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
요즈음 절판된 <한국의 살림집>을 다시 고쳐 쓰면서 곧 출판할 마련을 하고 있는 중에 이런 고려사의 기록을 다시 음미하고 있다.
대규모 저택을 우리가 다시 재현시켜본다면 어느 정도가 될려는지를 탐구해 보는 일도 재미 있을 것이다. 고려사의 기록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재미 있는 기사들이 많아 읽을 때 마다 흥미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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