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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23화

지난 10월 28일자 중앙일보 월요일 40판에 소개된 <북 만경대서 새로운 형태 고인돌 발견>이라 부제 한 "개인 墓로 가는 과정인 듯"의 기사를 읽었다.
함께 실린 사진에는 <북한 평양 만경대에서 발견된 새로운 형태의 고인돌 '돌널무덤+적석' 모양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고인돌은 고고학자들이 탐구하는 분야로 가볍게 여기던 木壽도 최근 들어서 고인돌에 대한 관심을 배가하고 있다. 고인돌에서 건축기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構築의 기법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工術의 발전은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이고 그 이전엔 도구 등이 부실하니 극히 초보적인 형성의 원초적인 수준이 고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木壽도 고작 그런 수준의 인식이었다.
그러다가 김대벽선생께서 찍어온 지석묘 구조를 보면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김 사진가의 카메라 눈에 잡힌 남방식 지석묘 구조는 매우 다양하였다. 마치 주초 놓고 기둥 세운 뒤에 거대한 巨石을 얹어 마감한 듯 한 고인돌도 있었다. 이는 마치 기초를 하고 주초를 놓고 기둥 세우고 지붕을 구조한 방식에 방불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원초인 들에게도 기초라는 工術의 개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미에는 "지석묘이니 그렇지 그들이 木造한 집을 지었다면 공술을 구사하여 번듯한 집을 지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지금에 발굴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움집은 아직 움집의 수준이지만 그 시대 지상에 노출된 집이 있어 그 자취를 남겼다면 지금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식견이 투영된 집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함축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받아드릴 수 있다.
김 사진가 카메라에 잡힌 지석묘 중에는 기둥으로 버틴 壁石과 올려놓은 거대한 지붕돌이 접합하는 부분을 잘 접합시켰는데 그레질 한 듯 한 솜씨가 발휘되어 있다. 그레질이라는 고급기술이 그렇게 발휘되었다면 그들은 이미 돌을 올려놓는데 도르래를 사용하여 말쑥하게 작업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고인돌 축조도 다분히 그런 기법이 구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을 木壽는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깨우침을 얻고 있다. 이런 점에 진작 눈을 뜬 분이 계시다면 함께 논의를 해보았으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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