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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독 대

장 담는 큰 독이 장독이다. 신라시대 장 담근 것을 왕실에서 내렸다는 기록이 있어 장독이 이미 신라 때로부터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그릇을 질그릇이라 하고 도기(陶器)라고 쓴다. 질그릇은 원초시대로부터 만들어졌다. 구석기시대 무늬 없는 민무늬 질그릇부터이다. 이를 고고학자들은 무문토기라 부른다. 질그릇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줄기가 지속되고 있다. 도기(陶器)의 계열이다.

자기(磁器)는 질그릇의 유구한 줄기에 잠깐 깃든 유형이다. 신라말엽부터 오늘에 이르는 자기 행렬이 첨가된 것인데 이는 청자, 분청, 백자의 유형이나, 청자도 천년 미만의 세월에 존속하였고 분청은 짧은 수명만을 유지하였을 뿐이며, 조선초엽부터의 백자는 6백여 년 지속되고 있다.

질그릇의 끊임없는 흐름에 비하면 잠깐의 세월동안 존속하던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장독대 주인공은 질그릇들이다. 자기는 거의 발붙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 때 백자로 만든 그릇들이 장독대에 올라앉았던 시기가 있었으나 마치 사랑방손님처럼 머물다 떠나서 이제는 그런 손님이 왔었는지 조차 아리송하게 되고 말았다.

장독에는 여러 가지를 담는다. 장만 담는 것이 아니고 보전해야할 여러 가지들을 독에 담아 두었다.

독이라 해서 꼭 장독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곳간에도 헛간에도 우물가에도 있다.

안악 제3호분이라 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4세기 때 살림살이 모습이 묘사되었는데 우물가에 물독, 드무와 물을 담고 그릇을 씻을 수 있게 나무로 만든 구이통 까지 구비되어 있다.

근세에까지 우리들이 집안 우물가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과 아주 흡사한 광경이다. 여기 물독 형상이 오늘의 물독과 영락없이 같은 모습이다. 고구려의 질그릇이 오늘과 유사한 것인데 벽화가 그려지던 300년대의 살림살이가 19세기의 것과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 우리에겐 매우 놀랍다.

이는 비단 장독의 흐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암시한다고 보아야 옳다.

질그릇에 소금을 먹이며 굽기도 하고 유약을 입혀 굽는 기술이 채택되면서 질그릇에도 변화가 생기며 오지독이나 옹기 독이 형성되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제조기법은 의연히 도기(陶器)기법에서 벗어나지 않아 자기(磁器)와는 구분된다.

장독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해서 장독대에서 보면 앞줄의 작은 독이나 항아리에 비하여 뒷줄의 것들은 키도 크고 부피도 우람하다.

그런 장독들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모양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는 차이를 보인다. 또 가마에 재어 넣고 굽는 과정에서의 하중을 고려하여 입 언저리 모양을 제각기 달리하기도 해서 장독을 많이 수집한 장소에 가서 보면 그 모양이 대단히 여러 가지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뉴욕에 한국 독 짓는 도공이 가서 많은 도예가 들이 보는 앞에서 독 짓는 일을 시범하였다. 여럿이 죽 둘러서서 바라보고 있는 틈새에서 물레를 돌려가며 자기 키 보다 더 큰 독을 완성시키고는 두 사람이 달려들어 그 큰 독을 냉큼 들어다 건조대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유수한 도예가 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자기네들로서는 도저히 그 크기의 독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하긴 그만한 크기의 독이나 항아리를 만들어 내는 민족이 지구상에 그리 흔하지는 않다. 더구나 그렇게 얇게 빚어낸다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는 점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는 도예가들은 한국 옹기쟁이의 그 놀라운 재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서는 한국식 옹기가마까지 만들었고, 옹기와 옹기가마를 통하여 역시 한국이 도예의 일류국임을 과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불행히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의 배타적 심성으로 해서 묵은 살림살이와 함께 장독과 항아리를 버리는 추세에 있어 이웃 문화국민들에게 핀잔을 듣고 빈축을 사고 있다.

다행히 그래도 고향집에는 아직 장독과 항아리 등속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일류 질그릇문화의 잔형을 지탱하고 있다.
부엌 앞마당에 장독대를 만들기도 한다. 대략 소백산맥 이남의 영남지방에서 그런 장독대의 예를 많이 본다. 그에 비하면 영북지역에서는 양지바른 뒤꼍이나 뒷동산에 장독대를 마련한다. 이는 기후 차이에서 오는 위치선정이라고 보이는데 남쪽은 고온다습하고 북방엔 추위가 몰아친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그런 추위와 풍토에 따라 독이나 항아리 입을 넓게 만들기도 하고 좁게 하기도 한다. 이는 담긴 식품의 발효숙성과 직결되어 있다.

풍토에 따라 지미(地味)에 알카리성이 강하면 산성식품(酸性食品)이 발달하지 못한다. 발효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만 해도 발효식품이 발전하기 어려운 토질이다. 일본의 된장과 간장은 자연숙성이기 보다는 인위적인 강제발효법에 의존하는 수가 보편적이다.

고추장도 김치도 젓갈도 없었던 것은 발효음식이 발달하기 어려운 풍토 때문이었다. 20세기에 이르러 김치가 일본을 풍미하지만 그 김치 맛이 우리보다 못한 것은 역시 지미가 우리와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발효음식의 그릇으로는 질그릇의 독이나 항아리가 제일이다. 숙성을 알맞게 이루어낼 뿐만 아니라 발효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때 옹기가 어떻다고 배척하면서 나이론으로 만든 화학용기를 사용하면서 근대화 대열에 참여하였다고 안심하였었다.

최근에 그런 그릇들이 지닌 독성에 의해 인체에 유리하지 못한 피해를 입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제 관심이 질그릇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옹기점을 찾는 주부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있다고 한다.

내다 버리던 장독의 아쉬움에서 벗어나려는 문화인들의 자기발견이기도 한데 그로 인하여 수 만년 질그릇 행진은 현대인들 공감 속에서 앞으로 더 지속될 전망이다.

다시 한옥에 잊었던 장독대가 들어서고 있고, 전에 비하면 그 규모로나 다양함이 많이 위축되긴 하였지만 따뜻한 어머니 손길이 머무는 장독대가 아이들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한식문화가 꽃피우게 되려나 보다.

장독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식생활의 금고와 같은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고 냉장고 없이 보존되는 식품저장의 신비에도 과학이라는 명제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질그릇에는 젖은 식품 외에도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옛 곳간에서 경험한 대로이다. 그 점도 우리 새 생활에 활용하면 매우 실용적이 된다.

실용적인 면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다. 장독대에는 어머니 정성도 차지하고 있다. 가족들의 편안함을 늘 축원하던 터주가리가 장독대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장독에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담겨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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