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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동평위공사견문록』에서 자료를 발췌하였다.

첫째는 살림집에 부연을 달지 못하고 둥근 기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 조선조의 국법이었다는 이야기, 둘째는 石工 사회의 이야기로 당시의 기능인 사회의 일면을 알 수 있다.


*法 집행에 事情 안 둔 金尙憲

일찍이 장약관(掌藥官) 박시량(朴時亮)이 조회에 참석하고자 입궐하는데 땅이 너무 질척거려서 신발에 흙이 묻지 않도록 대분투(大分套)를 신고 입궐하였다. 대분투는 대피이(大皮履)의 속명이다. 또 부역(富驛)에 사는 장현(張炫)이란 사람이 집을 짓는데, 처마에 부연을 달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나라의 법으로 아무나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 대사헌(大司憲) 김상헌이 이 두 사람을 잡아다가 죄인으로 다스리려 하였다. 박시량은 어려서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에게 글을 배웠는데, 오윤겸과 김상헌은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박시량의 처가 이런 관계를 알고서 오윤겸을 통해 남편의 죄를 면해 줄 것을 김상헌에게 청하도록 부탁하였다.

부탁을 받은 오윤겸이 말하기를 "청음(淸陰)은 내 아들이 법을 어겨 벌을 받아도 절대로 봐주지 않을 사람인데 하물며 남의 부탁으로 청탁을 한다면 봐주겠는가"하면서 불쌍히 생각은 하나 청을 들어 주지는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죄인으로 벌을 받았는데 오윤겸은 친구인 김상헌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한 공자(公子)가 있었는데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산정(山亭)을 지었다. 원주(圓柱)는 왕가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했으므로 대사헌 김상헌은 이것을 묵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둥근 기둥을 깎아 모난 기둥으로 만들었다.

청음 김상헌은 인조, 효종의 양조묘장(兩朝廟庭)에 배양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동업자를 무시한 石工이 몰매 맞다

"나의 당숙부 상국공(相國公)은 일찍이 석공 이경립(李敬立)을 시켜 사당 짓는 일을 하였다. 상국이 돌아가신 뒤에 자제가 경립의 노고를 생각하여 후히 값을 주고 묘 가꾸는 일과 석물 공사를 시켰다. 그런데 한 쌍의 石人과 石柱가 서로 모양이 달라서 부득이 석공 이명석(李命石)을 시켜 다시 깎아 세우니 모양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후한 값은 명석에게도 지불하였다. 석공 백천민(白天民)은 관공(官工)으로 늙은 사람이었다. 100여명의 석공을 모아 이명석을 단단히 매질하고 받은 돈을 내놓게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 천민을 불러 책망하기를 "이명석이 다시 깎기를 한 것은 재상집 명령으로 한것인데 네가 감히 어찌 벌을 준단말이냐" 했더니 천민이 변명하여 말하기를 "다시 깎으라는 명령이 있을 때 명석은 의당 경립과 함께 찾아 뵜어야 할 것이고 또 일이 끝났으면 이경립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잘하는 것처럼 위를 속이니 우리들이 명석을 죄주어 우리들간의 아름다운 미풍을 유지하려 한 것입니다. 또 사대부께서도 남의 허물을 나타내게 하고 자기가 능하다는 사람에게 속아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한다. 내가 할말이 없어 미안하다하고 돌려보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인간 사이의 도리 지킴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크게 깨우치게하는 일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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