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사랑방 이야기 제25화

by 신영훈 posted Dec 30, 2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曺喜煥도편수의 病床을 지켜보았다. 배가 아프다고 하였다. 도편수가 배가 아프다는 것은 그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였다는 증명이 된다. 도편수는 집 짓는 일을 시작하면 한 달에 3일간만 집에 다녀온다. 줄곧 일터에서 합숙을 한다. 그러니 먹는 일이 집에 있을 때만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영양공급이 부실한 수가 보통이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회식을 하게 되면 이번엔 흠뻑 먹고 취하고 만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럴 수  밖엔 없다. 결국 배에 부담을 주고 그래서 상태가 나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집에서 살며 부인이 만든 따뜻하고 다정한 음식을 먹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병을 앓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曺 도편수의 경우도 이와 같다. 그는 일을 맡으면 그 일이 완성되기까지 일터에 상주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조희환 도편수의 선생님이신 인간문화재 大木匠 李光奎선생님도 순천 松廣寺 大雄寶殿을 짓는 일을 하시다 세상을 뜨셨다. 역시 일에 골몰하신 분의 장중한 최후였다. 조 도편수는 스승의 그 진면목을 따라 하다가 결국은 回甲도 채 지내지 못하고 병상에서 고투를 하다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조 도편수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광규 대목장께서 서거하신 직후부터였다. 송광사 대웅보전을 끝냈을 때 명품이 탄생하였다는 칭찬을 들었다.
송광사 주지스님의 추천으로 雲門寺에 가서 大雄寶殿 짓는 일을 함께 하였다. 늘 그렇듯이 내가 기획을 하고 마련을 하면 조 편수는 그것을 이룩하는 일을 하면서 둘은 열심히 하나를 완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두 손바닥이 기막히게 화음을 이루는 절묘한 합동에서 우리는 완성의 환희를 맛보곤 하였다.
불란서에 가서 쎄느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그림 같은 한옥(李應魯화백 미술관)을 지었다. 함께 현지에 가서 먹고 자면서 그 일을 완성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런 환희가 善山의 東湖齋, 鎭川읍 연곡리의 寶塔寺 三層木塔에 이어졌고 영국 런던 왕실박물관 한국실의 사랑방 짓는 일로 계속되었다,
며칠을 밤새우며 지켜보는 중에 병이 더 악화되더니 영 눈을 감고 말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가 약속을 어겼다. 내가 먼저 가면 나를 잘 보내 준 뒤에 좋은 일 더 많이 하고 나를 따라오기로 작정을 하였던 것인데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훌쩍 뛰어넘어 앞서가고 말았다.
아마 극락에서 유능한 대목이 급히 필요하였나 보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나는 평생에 좋은 나무를 많이 잘라다 집을 지어 나무에게 신세를 졌다. 나 죽거든 화장해서 큰 나무 아래 뿌려주면 보답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그 유언에 따라 그렇게 할 작정이다. 그는 또 말하였다. “나는 곧바로 환생하여 다시 도편수가 되어 9층의 목탑을 짓고 싶다”고 하였다. 보탑사 3층탑 지은 이래의 소원이 9층탑 짓는데 있었다. 그 소원을 저승까지 갖고 갔다가 되돌아와 그 때는 분명히 그 소원을 이루리라는 念願이다.
지금 그는 진천 보탑사로 가서 49재를 겪고 있다. 나는 두 손 모으고 “그의 소원이 이루도록 하여주소서 ”하고 불보살님과 천지신명에게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