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43화

by 신영훈 posted Dec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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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권위를 자랑하면서 한국문화는 다 중국문화를 본받았다고 하시기에 압록강 유역의 조선족이 한족들 사는 마을에 들어가 집 짓고 살아도 그 집이 한족의 집과 다른 것이 현실인데 중국문화를 닮았다면 마땅히 한족의 집과 같은 집을 짓고 살아야 되는것 아닌지요? 하고 질문을 하였더니 어름거리며 대답을 못하더라고 한 학생이 전해 주었다. 그 학생은 한옥문화원에서 내게 중국의 한족들 살림집과 우리 사람들이 짓고 사는 집이 서로 다른 점을 현지 조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배운 바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였다고 하였다.
한족들의 집과 우리 백성들이 이주해 사는 집은 한 눈에 달라 보인다. 압록강 유역뿐 아니라 내륙으로 가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우리들은 목격하였다.
같은 초가여도 한족의 집은 출입구가 중앙에 있으나 우리 집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압록강 유역과 고구려, 발해 땅의 한족들 집에는 구들이 채택되었다. 추운 겨울의 난방을 위한 시설이다. 만리장성 안쪽의 야웃둥이라는 황토벼랑을 파고 들어가 만든 굴집에도 구들 들인 집이 있다. 이들 구들의 시원은 고구려이니 오히려 압록강 유역을 비롯한 넓은 지역에서 고구려문화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셈이된다. 그러나 그들의 구들은 생활한 것이 아닌 단순한 난방용이어서 중앙의 입구를 경계로 하여 안방과 건넌방에 따로 구들 시설을 하나, 우리는 함경도식의 고구려 구들 유형의 겹집에서는 출입구를 한쪽 끝에 두어야 정지간부터 시작되는 구들과 함께 살림살이가 시설되게 된다. 집이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이다. 우리 백성이 그 분 말씀대로 다 중국문화를 본딴 것이라면 가장 기본이 되는, 집이 같아야 하는데 전혀 다르다.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버릇 처럼 하는 분들에게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 설명이 불충분 하면 그의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중국 당국에도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만 우리들 사이의 이 모화사상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간 여러번 중국 여러지역을 다녀 보지만 우리 건축과 같은 것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고, 있다면 우리, 북방민족들이 이룩한 중국문화속의 자취를 찾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서로 자료를 교환하면서 탐구를 하면 우리들 자체정화에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