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壽의 이야기사랑방 제 75화(L.A 통신3)

by 신영훈 posted Jun 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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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壽의 이야기 사랑방 제75화
3시간 만에 슬라이드 상영은 끝이 났고 한국문화의 깊이가 미국문화에 작용할 수 있음을 다들 공감하면서 즐거운 환담을 나누었다.
그 이튿날 23일은 일요일인데 L.A. 고려사高麗寺에서는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하였다. 고려사는 한국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주군 조계산 송광사 승보사찰의 말사로 입적하신 구산九山방장스님께서 미국에 가셔서 포교활동 하실 때 개원하고 30년 넘게 구산스님의 제자인 현호玄虎스님이 주지스님 직을 맡아 충실하게 교포사회를 순화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아주 큰 건물로 이사하고 첫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였다.
木壽는 송광사 제8차 중창불사 때 구산스님의 유명遺命을 받아 문화재관리국 (지금의 문화재청)의 상근전문위원직(별정직)을 물러나와 송광사에서 승복 차림으로 당시의 주지스님이신 현호스님을 도와 전후 10여년간 머물렀던 인연이 있어 이 봉축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여간 감회가 깊은 것이 아니었다.
현호스님은 경복궁 동편 사간동에 도시포교당 법련사法蓮寺를 창건하고 600년 조선왕조의 배불정책의 중심지였던 경복궁일원의 분위기를 쇄신하면서 불교문화 창달에 힘을 기울이고 있기도 한데 木壽도 그 법련사의 불일문화원장佛日文化院長의 소임을 맞고 있어서 이번 행보에 고려사를 예방한 일과 봉축행사의 참여는 가슴 설레는 즐거움이었다.
봉축행사에는 약 300여명이 모였다. L.A의 불교집회로는 규모가 대단한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불교가 기독교의 사회에서 이만한 교세를 누린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신도 분도 계셨다.
그날 오후에 木壽는 안내를 받아 할리우드 일대를 구경하면서, 영화를 보고 심취하였던 어려서의 생각을 되살려 보았다. 무슨 일이던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결국 문화의 흐름으로 그 자취를 남긴다는 성현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경제와 인기가 바탕이었다고 해도 이런 문화의 그릇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취가 이만큼 뚜렷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여러 시설물들을 보고 다녔다.
중국문화가 기여한 시설이 중심가에 있었다. 당당한 규모이었다. 산 위에는 일본문화가 건설한 규모 큰 건물이 있었다. 동양문화가 그렇게 기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것은 없다. 우리 교민들은 자리잡기 바빠 아직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제부터 우리 하기에 따라 한국문화의 한 축이 여기에 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으로 당당히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그런 기대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중국과 일본의 자취만 있다는 점에 어떤 질투를 느낀 것은 아니다. 고구려 이래의 우리민족의 역동성이 세계문화발전에 기여해 왔으니 이런 분야에서도 빠지지 말고 진가를 발휘하자는 희망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교민들에게 문화 받침만 충실히 해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므로 우리도 문화정책을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할리우드라 해도 영화산업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문화의 광범위한 참여가 있어야 그 빛을 발하게 된다면 문화정책 입안자들 모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쪽을 여행하신 분들이 적지 않으실 터인즉 과연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다. 다 함께 힘을 합치면 한 목표가 이룩되지 않으려나 싶다. 그러기위하여는 우리문화의 정수를 정리하는 문화정책이 선행되고 그 내실이 충실해지면 교민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리라고 본다. 청와대 비서실에 문화담당 비서관이 계시다면 이 분에게 먼저 의논을 드리고 싶다. 그런 직책의 문화인이 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