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 5. 이상형의 한옥

by 운영자 posted Dec 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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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의 한옥

산이 많은 고장의 골짜기에 열린 넓지 않은 형국에서 평저한 곳은 농사 짓는 논밭이 되어야 한다. 집터는 들녘을 피해 산기슭에 올라서야 했다. 산기슭의 집터는 조건이 까다롭다. 뒷산이 날카로우면 인격 함양에서 심성이 메마르며 단기(短氣)에 치우친다. 뒤쪽 산형이 둥글고 너그러우면 백성들은 덕기(德氣)에 넘친다. 산사태가 날 자리엔 집터를 잡을 수 없다. 큰물이 쏟아지는 계곡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집터 고르는 일이 까다롭다.

집은 남향으로 지어야 한다.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 볕이 잘 든다. 이런 터전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바람기가 있어 시원하다. 산의 능선 중 어느한쪽이 낮아 바람이 휘몰아치면 나쁘다. 바람기도 온화해야 한다. 이런 터전을 바람기 머금었다고 말한다.

산은 고정되어 있지만 계곡의 물은 늘 흐르고 있다. 산이 조건을 만족스럽게 구성하였는데도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물도 좋아야 한다. 이렇게 고루 갖추어진 터전을 우리는 좋은 집터라고 부른다.

이런 집터 중에서 아늑한 골짜기의 서편쪽 능선 아래로 맑은 물이 알맞은 양으로 흐르면 으뜸이라 손꼽았다. 그 물줄기는 집의 앞면에 이르면 동쪽으로 곧게 흘러 남향한 대문 앞을 지난다. 대문 앞을 지난 물줄기는 집의 동쪽에 만든 연못으로 흘러든다. 연못에 모였다가 넘처 흘러야 수덕(水德)을 충분히 받았다고 믿었다.

자그마한 연당은 네모 반듯하게 장대석으로 호안을 하였다. 연당 중앙에는 작은 섬을 만든다. 당주(當州)라 부른다. 이런 섬이 있으면 부귀공명하고 자손들이 번창한다고 하였다. 섬은 연못의 물이 썩지 않게하는 기능도 지녔다. 정자와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이 만들어져 손님을 맞아들이고 공부중에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대문 앞에는 명당수가 흐르기 때문에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연히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런 도랑과 돌다리는 좋은 터 고른 고급집에는 으레 있게 되고 궁궐등에도 구조된다. 다리는 역시 화강석을 다듬어서 돌다리를 놓는다. 돌다리는 아주 간결하게 구조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긴돌을 다듬어서 몇 개를 나란히 병렬시키는 정도로 완성한다.

돌다리 남쪽은 바깥마당이 넓직하게 자리 잡는다. 가을의 추수와 농작업에 충분한 크기로 만들어 진다. 한쪽에는 비를 피해 물건을 넣어놓을 수 있는 헛간이 만들어지고 한쪽에는 추수가 끝나고 남은 볏가리가 쌓여진다.

창덕궁의 연경당을 보면 다리건너 대문간채에 이른다. 대문간채에는 장락문(長樂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오래오래 즐겁게 살고자하는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문간채는 바깥마당과 가까워 가을 걷이를 보관할 수 있는 여러가지의 창고들이 만들어 진다. 한쪽에는 마구간과 외양간이 있어서 농작업에 쉽게 동원될 수 있도록 한다.



연경당과 연못



문간채 한쪽편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채가 들어서 있다. 곳간채는 통풍이 잘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면으로 부터 높이 띄워 루각형태로 만들어 진다. 반빗간에도 작은 곳간이 있지만 여기에는 바로바로 사용될 곡식이 보관된다.

문간채를 들어서면 행랑마당이 있고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에는 출입문이 2곳에 마련된다. 여성의 출입구와 남성의 출입구가 구분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사랑마당이 있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안마당에 이른다. 행랑채에는 아랫사람들이 거처한다. 살립집이 마련되 있어야 한다. 또 곡식도 종류별로 보관하기 때문에 행랑채에는 작은 창고들이 많이 필요하다. 곡식뿐만아니라 잔치에 쓸 술도가도 행랑채에 만들어진다.

행랑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큰사랑채가 있고 우측에는 ㄴ자로 아랫사랑채가 있다. 큰사랑에서는 바같주인이 거하고 아랫사랑채에는 장성한 아들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아랫사랑채에는 훈장님 방도 따로 있고 대청이 넓게 만들어져 여럿이 모여 공부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막혀있어 샛문을 통해야만 건너갈 수 있다.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큰 사랑채 뒤로는 아늑하고 쾌적한 곳을 골라 노부부가 거하는 뜰아래채를 두었다. 뒤에 후원의 정자와도 연결되어 있어 자연과 가장 가깝게 접하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도록하는 배려이기도 하다.

안채 뒤로는 반빗간이 따로 마련된다. 이와같이 큰 대가집에서는 식사준비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서 식사를 준비하는 채를 따로 두었다. 반빗간 뒤로는 우물과 장독대,곳간 등이 있어서 식사준비를 편리하게 하였다. 안채 서쪽으로는 별당채를 따로 두어서 과년한 여식이 거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