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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주거형태 - 1. 선사시대의 살림집

by 운영자 posted Dec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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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사시대의 살림집

(1) 움집(발굴을 통해 알려진 자료)

① 일반형 타원형이거나 부정원형-- 지름 대략 6m 내외, 깊이 60cm정도
작은 규모(황해도 봉산 지탑리 3호)--지름 3.5m 깊은 움집(평양 궁산리 1호) 깊이 1.2m

② 바닥은 흙바닥이거나 돌을 깔아 정리하기도 한다. 오산리 1호,서포항 3호는 바닥의 진흙을 다져서구웠다

③ 바닥에 화덕을 설치하나 그 위치는 일정하지 않다. 화덕 주변에 돌을 더 설치하여 여열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암사동 움집은 평면과 화덕 모양이 비슷하다. 궁산리 2,5호 집에서는 화덕 옆에 진흙으로 똬리처럼 시설

④ 저장용의 질그릇 항아리를 바닥에 묻어 세우기도 한다. 지탑리 1호집 저장시설은 5곳. 그 중 하나는 화덕 옆에 위치

⑤ 한편에 출입구가 있다. 발디딤을 시설하고 오르내리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한강변의 암사동 유적지 움집 출입구는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층계로 발 딛을 자리를 마련하였다. 출입구의 방향은 대략 동남방에서 서남향 사이에 있다.

(2) 움집 짓는 방식

가. 중앙에 일렬로 기둥을 묻어 세우는 방식

나. 중앙에 네 기둥을 세워 골격의 중추를 이루게 하는 방식

다. 기둥 구멍에 잔돌을 넣어 주초로 삼은 방식

라. 너러석돌을 바닥에 깔고 주초석으로 이용한 방식

마. 가는 나무를 집 둘레에 촘촘히 일으켜 세워 골격과 지붕과 벽체 구실을 함께 하도록 구조한 방식

바. 벽체와 지붕 구조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시설하는 방식에서는 서까래 구조가 완연하다.

사. 골격이 되는 나무 사이를 산자로 엮거나 끈으로 두름 엮어 간격을 메우고는 초재(草材)나 여타의 재료로 외기를 차단할 수 있게 막는 방식

지탑리 유적지에서 조사된 움집 일람표

한강 암사동 유적지 움집 일람표

(3) 움집의 구들 시설

① 함북 웅기에서 신석기시대 움집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는 고래를 켜고 구들을 시설하였을 구조를 보이는 예가 발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시대가 앞선 구들시설로 알려지게 되었다.

② 수원의 철기시대 움집 구들. 수원 서둔동 야산에서 발견된 7호 집터에서 아궁이와 고래가 있는 자취가 나타났다. 약 30cm정도의 흙 벽돌을 세워 고래를 만들고 같은 벽돌로 구들장을 만들었다.  구들은 북벽과 서벽 밑으로 시설된 쪽구들의 형태이며 서편 벽 동편 끝에 굴뚝 자리가 있고 아궁이는 서벽 쪽에 있다.

③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 움집터. 이 움집터에서도 구들 시설 발견. 역시 벽을 따라 꺾이어 시설된 쪽구들이었다.  이 집터는 유적층이 3단 중복되어 있는데 제일 아래층은 B.C2∼1세기, 중간층은 A.D1∼2세기, 상층은 3∼4세기로 보인다. 이 지층에서 출토하는 철재는 매우 재질이 우수하다. 고구려 철재의 한 자취를 찾을 수 있다.

(4) 참고

① 움집의 유적

* 무산(茂山) 호곡동(虎谷洞)유적 함경북도 무산군 호곡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친 움집 유적. 두만강 상류 계곡과 성천(城川)이 합류하는 유역에서 유적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호곡동은 그 중심지역에 해당한다. 제 1기에 해당하는 제 9호 움집은 정방형에 가까운데 한 변 길이가 3.8m이며 깊이는 1.08m이고 동서남북 방향으로 기둥구멍이 15개 나란하다. 중심부에 화덕자리가 있는데, 10㎝ 정도 움푹하게 파고 그 둘레에 15∼25㎝정도 크기의 개울 돌 8개로 둥글게 조성하였다. 토기, 돌도끼, 방추자 숫돌, 흑요석기 등이 출토.

* 회령(會寧) 오동(五洞)유적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오동은 두만강 중류 오른편 연안 평야지대에 있으며 청동시대에 취락주거지. 이 부근에는 성동(城東), 봉의(鳳儀), 검은개봉(黑狗峰), 금생(金生), 매지허리(沙乙峴) 등의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  오동은 이들 유적지의 중심부에 해당하며, 수만 평에 산재하여 있고 유물층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걸쳤다. 1954년과 1955년에 발굴 그 중 6기의 집터와 작업장을 조사한 결과 토기, 석기, 골각기, 인골 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움집터는 모두 장방형이며 안에 기둥구멍과 화덕자리, 석기를 만들어 제작하던 자리가 발견되었다. 벽재로는 갈대와 사리나무, 진흙을 사용하였다. 대략 B.C 6∼6세기 사람들이 살던 흔적으로 보인다. 움집 평면 넓이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5.8×4.1m, 5.2×4.5m, 9.6×4.5m, 8.4×6.5m

<움집 평면, 단면, 입면>

② 마루가 있는 오두막집

    경남 김해시 부원동 유적지에서 오두막집(다락집)의 자취가 조사되었다.     고온 다습한 남방에서 출현하는 다락집의 예는 그 구조상 자취를 남기기 어려우나 이런 유적의 존재로 해서 다락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주거지유적 일람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