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한옥교실

청소년 한옥교실 10 - 한옥에 담긴 지혜

by 운영자 posted Dec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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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풍토는 사철이 분명하고, 산이 많다. 그래서 그러한지 한국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외경은 건축에 잘 반영되어 있다.

한옥은 집을 짓기 위해 터를 파헤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터 생긴 대로 약간만 손질하여 집을 짓는다. 정녕 부득이 하지 않으면 터를 깍지 않고 오히려 돋아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사람처럼 자연에 순종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문명인들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한국의 집들은 자연의 특징에 잘 어울리면서 순화되었다.

한옥은 이웃나라 살림집과 다르다. 한옥에는 겨울에 따뜻한 구들 드린 온돌방이 있지만 중국 한(漢)족이나 일본 집에는 온돌방이 없다.

한옥에는 방에 이어 마루 깐 대청이 있다. 일본 집에는 마루 깐 방은 있어도 대청은 없다. 중국 남방에 간란(干欄)형 다락집에 마루를 깔았으나 방이 없고, 중원지방에는 마루 깐 대청이 아예 없다.

구들 드린 온돌방과 마루 깐 대청이 연합된 집은 우리뿐이어서 '한옥'이라 하는데 이는 한식이나 한복과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것, 고유하다는 의미를 지녔다.

구라파에서도 합리적인 최신식 난방으로 온돌시설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는 추세에서 보면 구들이야말로 인류가 발견한 난방법 중 최고시설이다. 구들과 대조적으로 마루 깐 대청은 냉방용 시설이다. 무더운 여름에 따로 동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상당히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한옥은 산기슭에 자리잡아 배산임수(背山臨水) 한다. 산의 시원한 공기가 집 마당의 더운 공기 쪽으로 흐르면 대청 뒷벽에 열린 바라지창을 통과한다. 집에 가로막혀 잠시 머물던 시원한 공기가 바라지창을 통과하며 속도가 붙어 바람기가 일어난다. 그러니 대청에는 늘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냉방장치가 가동되는 셈이다. 더 시원하길 바라면 부채질이나 선풍기를 틀면 그것으로 족하다.

한옥은 처마가 깊다. 기둥 밖으로 서까래 끝이 많이 나가 있어서 여름의 뙤약볕을 가려준다. 여름 해는 높이 뜬다. 하짓날 12시에 태양이 떠 있는 남중고도(南中高度)는 약 70도이다. 북위 38도 부근이 그렇다. 수평의 마당에 기둥이 90도로 섰을 때 70도이니 가파르게 높이 뜬것이다. 그 볕이 처마의 차양에 걸려 집안은 그늘에 든다.

그러나 요즘의 양옥들은 어떠한가? 네모 반듯하여 햇볕을 가릴 장치가 전혀 없다. 뙤약볕이 깊이 들어와 집안을 무덥게 하니 빚을 얻어서라도 냉방장치를 하고 삼복 더위에는 하루 종일 틀어 댄다. 엄청난 동력이 소모된다. 처마가 발달된 한옥의 지혜를 채용하였더라면 훨씬 절약될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점을 도외시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에너지를 절약하는 운동을 하잔다. 이는 소탐대실로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할만하다. 낭비요소를 제거하는 일이 국민경제를 부강하게 하는 첩경이라면 지나친 낭비를 조장하는 오늘의 주택구조와 형태를 재고하며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깊은 처마는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다. 그것을 천연스러운 곡선으로 날렵하게 만들었다. 한옥의 처마곡선은 정면에서 보면 좌우로 들리는 2차원의 선을 이루나, 처마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 곡선이 다시 안 허리가 잡히는 3차원 곡선을 이룬 독특한 구조이다. 다른 나라 어느 명품의 건축에서도 볼 수 없는 우아한 선을 이루고있는 것이다.

한옥에는 구석구석에 수장공간이 있어 그 많은 세간과 살림살이를 잘 간직하였다가 철에 따라 바꾸어 쓰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집단주거는 수장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제사상이나, 병풍 하나 제대로 넣어둘 장소가 없어, 독립가옥의 살림살이들, 조상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죄 버리고 가야하는 지경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100여년 된 문물을 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입만 벌리면 유구한 전통에 빛나는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조상의 손때 묻은 자취를 다 내다버리고도 말이다. 그러면서 조상의 지혜를 계승하느니 하는 말은 터무니없고 염치없는 일이다. 보존을 위한 노력에서 한옥엔 많은 수장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오늘의 현대건축에서도 그 지혜를 다시 활용하여야 한다.

한옥은 사는 사람의 인체를 기본으로 하고 공간을 설정한다. 우리가 "높다" 할 때의 기준은 사람 눈 높이를 수평기준으로 삼는다. 한옥 지을 때 사람의 평균신장 5척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5척에 3을 상관시킨 15척이 살림집 방의 기본 넓이이다.

신라에서는 백성들 집 넓이는 15×15척, 벼슬을 하면 18×18척, 더 높아지면 21×21척 그리고 진골(眞骨)에 이르면 24×24척의 넓이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법령으로 정하였다.

법령의 수는 3×5=15, 3×6=18, 3×7=21, 3×8=24의 관계를 지녔다. 기본인 백성의 집, 3×5=15의 3은 우주의 수로 땅과 집과 하늘을 상징하며 5는 백성들 평균신장이다. 그리고 15는 1에서 9까지 수의 역수(易數)이기도 하다.

15척 사방의 중심점을 정한다. 중심점 좌우나 전후로 7.5척의 간격이 생긴다. 7.5척에서 평균신장 5척을 빼면 2.5척이 남는데 그 2.5척이 앉은 이의 상징적인 좌고(坐高)가 된다. 앉은키인 것이다.

앉은키에 서 있는 이의 한 길, 5척을 더하면 방의 천장 높이가 된다. 15척 사방에 7.5척 높이의 공간 중심에 인간이 앉았으면 그 기(氣)의 순환이 순조로워 늘 기가 고르다고 말한다. 만일 천장을 낮게 하면 사람은 점점 기가 쇄하여지다가 바싹 내리면 기색하고 만다. 반대로 천장을 높여주면 기가 승하다가 버썩 높이면 기고만장이 된다는 것이 우리 선조 들의 생각이었다.

방의 창에는 머름을 드린다. 그 머름은 앉은 이의 겨드랑이 높이이다. 1.8척인데 이는 머름 위에다는 두 짝 짜리 창, 그 창의 한 짝 넓이와 일치한다. 머름 높이가 정해져야 문갑 높이를 정할 수 있고 다른 가구들을 설정하게 되는데 가구의 형상 비례도 인체로부터 비롯된다.

대청에서 안방으로 들어서는 분합문에는 불발기창이 있는데 그 창의 아래 테두리를 앉은 이의 눈 높이에 맞춘다.

방은 앉은 이의 공간이지만 대청은 서서 다니거나 제사를 받들거나 하는 기능이 고려된다. 천장은 서서 다니는 이의 평균신장 5척에 다시 한 길 5척을 더하여 10척으로 설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한옥은 이렇게 인간이 중심이 되어있다. 인간은 기성복 사 입을 때도 자기 치수에 맞아야 편안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는 집의 방 넓이나 부엌 천장 높이는 사는 이의 신체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이는 집에 사는 인간을 무시하였다는 비평을 들을 만 하며, 선대들의 지혜에서 벗어난 결과가 되고 만다.

이제는 우리가 살림살이 할 집을 남의 식견을 쫓아 짓는다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활 방식과 정서에 걸맞는 주거 문화가 있다. 선조 들의 지혜를 오늘의 우리 집에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이 요구되는 때다.



*이 글은 2001년 주택은행 사외보에 실었던 신영훈선생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