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는 순서와 기법

3. 배치에서 지붕까지 - (5) 주춧돌

by 운영자 posted Dec 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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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춧돌

    기둥을 따로 세우는 집에서는 터를 고르고 지경 다지고  방아
    찧어 단단히 견축(堅築)한 자리나 입사로 기초한 자리에 주초
    (柱礎)를 놓는다.

    주초를 놓기 시작하였을 때,  처음에는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
    였다고 한다. 이만영(李萬榮)선생은 『재물보(才物譜)』 에서
    나무주추에 관해 "나무 주추는  '獳'라 쓰며  그 발음은'지(支)'
    와 같이 한다.  옛날엔 나무로 주추 삼았던  것을 지금은 돌로
    쓴다."고 하였다.

    돌을 주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를 어느 때로 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분분한데, 『삼국사기』의 고주몽과 관
    련된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유리왕조(琉璃王條)에  보이는
    기록을 초기 단계의 내용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짙다. 유리왕
    조의 관련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禮)씨에게 장가들어 아기를  배었는
    데, 마침 주몽은 부여왕족들의 시기를 받아  압록강 쪽으로 탈
    출해야 했다. 그가 떠날 때 부인에게 "일곱모난  돌 위의  소나
    무 아래에 유물이 감추어져 있으니, 그것을 찾아 가지고  나를
    찾아오면 아들로 믿겠다. 는 말을 남겼다. 장성한 아들 유리가
    일곱모난 주추 위에 소나무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밑에서  도막칼 하나를 찾아낸다. 이것이  신표(信標)가  되어
    부왕(父王)을 만나고, 유리는 고구려 제  2대의 임금이 된다.

    『삼국사기』연표에 따르면, 고주몽이  살던  집은 B. C 37년
    이전에 지어진 집이다. 주몽이 B. C 37년에 고구려를  개국하
    였으므로 부여에 살던 집이 윗대 어른이 지은  집이라면  적어
    도 B. C 60년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하게된다.  이미 그  시기
    에 일곱 모난 주초를 다듬을 수 있는 기법이  발달되어 있었다
    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에겐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현대인들 중에 서구식 기하학에 정통한 분은 7각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 생각한다. 360도의 원에서 7각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론이다. 그런데도 동양에서는 7각을  자유롭게형성
    하였고, 인도에서는 7각의 동전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  그런
    7각이 고구려에서는 B. C 1세기에 응용되었고  고주몽의  집
    에서는 주초석으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돌 다듬는 기법은 상당한 발전을 하였던 것으로 믿어
    진다. 집안 태왕릉의 석재 중에 돌을 둥글게 떠낸 쐐기의  흔적
    을 남긴 것이 있다. 이런 기법은 지금도 매우 어렵다고  고개를
    설레는 정도이다. 그런 것을 5세기 이전에 이미 그렇게 만들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
    드릴 수 있다.

    ⼘ 조선조 중기에 간행된 『산림경제』에는  돌을 써서 주춧돌
    놓는  기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가난한  백성들이  훈련된
    목수 없이 집을 지을 때 참고삼도록 하였다.

    초(礎)를  축기(築基,  기초)위에  놓을  때는  반드시 첩토온안
    (帖土穩安)하여야 되는 것이니, 약간이라도  흔들려  빈자리가
    생기면 안된다. 만일 간격이  생겼다고 해서  돌조각을  덧끼워
    받치려 해서는 안된다. 이럴 때는 잘 다져진  땅바닥이나  입사
    기초된 부분으로부터 평평하게 고른 위에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아야 동요될 염려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모
    르고 단지 고임돌로 주추를  고이고 밖으로  진흙을  싸발라 가
    리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초 바닥이  비어서  물이 스며들
    면, 겨울에 얼어  부풀어올랐다가 봄에 녹아  내리면서  가라않
    아 주추가 기울어지고, 심하면 기둥이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
    므로 주초를 놓는 일은 아주 신중히  해야 한다.
    고구려의 발달된 기법에 비하여 너무나 대조적인 양상을 이 기
    록에서 볼 수 있다. 시대가  내려올수록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
    였을 것이란 소박한 생각을  뒤흔드는  사상(事象)이다. 건축기
    법이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절정을  구가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사실이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
    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BC 3000년경에 이미 화강암을 떠낼 때 발달된
    기법을 구사하였다 한다. 또 그런 자취를 오벨리스크를 다듬던
    화강암 채석장에서 木壽는 직접 보기도  하였다.  B.C 1세기의
    고구려의 일곱모 난 주초석 다듬는 일이나 5세기  이전 태왕릉
    의 둥글게 떠낸 석재는 인류가 발전시킨 기법의 유구함에서 충
    분히 가능한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