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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팔각원당 시공현장을 견학하고(7-마지막)

마지막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일요일 일곱 번을 현장참관으로 선약해 두고 여기저기 생겨나는 주말행사를 물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흔적없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을 2003년 여름과 가을의 주말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화처럼 남아있는 귀접이식 천장구조를 2천년이 지난 오늘 재현하는 일을 참관했던 뜻있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설 깬 새벽잠을 달래며 평소보다 조금 많은 16명의 동학들이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문화재전문위원을 지내신 유문용 선생님께서 현장일을 도우러 함께 출발하였다.
유선생님은 원당내 제단과 닫집 문양을 그리고 초각하는 일을 맡아 두고 계셨다. 이 시대 명인들을 이렇게 동원하여 짓고 있는 팔각원당은 준공과 함께 틀림없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될 것이다.
현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지붕에 기와 얹는 일과 벽면 수장재 작업을 함께 진행하느라 현장인력은 평소보다 서너 배 쯤 많이 투입 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11월 29일까지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건축주의 주문이 있는 터였다. 지붕 가득한 瓦工들은 연신 움직이며 瓦刀로 기와를 두들기고 있었고, 기둥사이 벽면에는 목수들이 주선,문선,상인방,하인방 등 수장재를 맞추어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도편수 선생님은 치목장에서 우리를 맞았다.



치목장에서의 수업


"여러분은 현장에서 벽면 수장재 설치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원당 벽면은 모두 판벽입니다. 수장재에 맞추어 판재로 벽면을 마무리합니다. 흙 대신 판재로 벽을 시공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도편수께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도 참관인들에게 내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목재는 수축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약 0.3%이지요. 길이방향은 그의 약 40분의 1정도 밖에 안되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판벽은 판재를 가로로 설치하기 때문에 수축율을 감안해야 하지요. 너비 여덟치짜리 판재 일곱개가 중인방과 하인방 사이에 끼워집니다. 약 여섯자 높이가 되는 셈인데 수축율 0.3%를 감안하면 1.8푼, 약 2푼 너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야합니다. 따라서 제일 위에 끼우는 마지막 판재는 수축하는 만큼 더 넓어야 하고 그 넓이 이상 중인방의 호를 더 파내야 합니다. 그래서 하인방의 호는 3푼을 파내는 데 비해 중인방은 1치를 파내 수축예상치 2푼 너비를 충분히 끼울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고정되 있는 틀(중인방,하인방과 좌우 주선)에 어떻게 판재를 끼워 넣는지 말해볼 수 있을까요?"
수축치수를 감안하여 치목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목재의 특성을 그렇게 소상히 알아야 한다는 것, 그 특성에 맞추어 치목하고 집을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들으며, 그리고 판재를 끼워 넣는 방법을 궁리하며 그 만만치 않음에 우리는 간간히 한숨을 내쉬었다.

"밑에서 여섯 번 째, 그러니까 위에서 두 번 째 판재를 제일 나중에 끼움니다. 좌우 주선에도 판재를 끼우는 호를 3푼씩 파내는데 6번 판재 끼우는 자리는 왼쪽 주선을 1치정도 따냅니다. 이 자리를 통해 1번부터 5번 판재를 우선 끼우고, 제일 위 즉 7번 판재를 끼워 위로 올려 붙인 후 마지막 6번 판재를 끼움니다. 판재를 모두 끼우면 6번 왼쪽에 1치정도 따낸 홈을 다른 부재로 맞추어 메우면 판재 시공이 끝납니다. 이 때 맨 위 판재 넓이는 다른 것보다 수축치 2푼이 더 넓으며, 더 넓은 판재를 받아 주기 위하여 위에서 말한대로 중인방 밑면의 호를 더 파내는 것입니다."

판재를 대고 그냥 못질을 하는 시공은 매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의 궁리와 수 많은 세월의 경험이 쌓여 결구방식을 창안해 내고 건축은 완성도 높여 왔지만, 우리같은 아마추어는 완성도 높은 건축 뒤에 숨겨진 노고들을 보고도 보지 못해왔다.

다음은 원당안의 마루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마루는 원당 중심에서부터 각 기둥으로 뻗어나간 여덟개 장귀틀과 장귀틀 사이에 각각 하나씩 설치한 동귀틀 때문에 방사상 모양을 띠고 있었다. 처음 설계설명회에서는 네모모양의 우물마루 모양이었으나 방사상 모양을 한 것은 역시 왕대공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뻗어나간 추녀와 그 사이의 선자서까래와 조화를 고려한 것 같았다. 마루청판은 장귀틀과 동귀틀 사이에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치수를 늘리면서 동심원 모양으로 결구될 것이다.
다른 부재가 그렇듯, 마루를 이루는 부재도 생각보다 훨씬 굵고 두꺼웠다. 장귀틀은 가로 1자, 세로 8치, 길이 12자, 동귀틀은 가로8치, 세로 6치 굵기였고 마루청판은 두께가 1치6푼이나 되었다.
원당 중심점을 팔각으로 두른 팔각귀틀로부터 장귀틀과 동귀틀이 팔방으로 뻗어나가 벽면에 닿아 있는 여모귀틀에 까지 이르고, 힘이 집중되는 24곳에 호박돌과 동자주를 얹어 귀틀을 받치게 된다.
도편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원당의 정문 여닫이 구조를 설명하였다. 둔테구조라는 신기한 것이었다. 문은 두짝이 모두 안쪽으로 열리도록 된 것이었는데 둔테란 문 위.아래에 문의 회전축을 이동시켜주는 구실을 하는 부재였다. 둔테구조 때문에 문은 바깥에서 두 짝을 동시에 밀면 열리지 않게 되고 한 짝을 붙잡고 다른 한 짝을 밀어야만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원당은 높은 곳에 있어 바람이 많다. 바람이 불어도 문을 밀어 붙여도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팔각원당 기와 이는 모습

우리는 설명을 모두 듣고 원당 시공현장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북새통인 현장은 앞으로 일주일 후쯤이면 완공하게 될 것이다. 난생처음 한옥 시공과정을 참관하면서 전래의 법식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으로 정립된 것인지 새길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귀중한 각각의 이야기들을 한 시간 혹은 10여분만에 간추려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지만, 약간의 피로에 지쳐 그게 행운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낸 것 또한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배운 것으로 뚜렷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집은 목수들이 짓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집은 결코 지을 수 없다. 엇나간 끌질자국 하나에는 청명한 가을날을 고운님도 없이 현장에서 삭혀야 했던 총각목수의 상처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팔각원당은 수 백년 동안 수리없이 건재하도록 지어졌다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지은 건물 개보수는 누가 하느냐고 누군가가 장난스레 물었을 때 도편수께서 한 말이다.
그래서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은 개보수 작업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 한다.
팔각원당은 남고 사람은 간다. 그러나 만백년이 지난 어느때 섬진강 상류 옥정호변에 팔각원당의 유구가 발견되고 거기 상량문에 집지은 목수들의 이름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도편수 이광복, 부편수 이재호, 목수
김광석,김대경,김영중,김우희,신기선,정삼용,정윤주.............
/2003.11.16. /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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