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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아파트를 우리가 살 집 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넘들이 좋다고 하길래 살아보니 편하긴 편했습니다. 그래도 싫었습니다. 제게는 두 가지가 아파트 생활을 못 견디게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발이 뜬 채로 살기 싫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속에 사람들을 채워 넣은 채 시루떡처럼 머리 위에 집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채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란 그 중 반드시 한가지는 피할 수 없는 구조여서 할 수 없이 밑에 깔려 살기로 했습니다. 그만큼 제게 흙은 중요한 것이었나 봅니다.  아직도 '집'이란 말을 생각하면 각자 자기의 지붕을 갖고 있는 건축물이 연상됩니다. 아마도 제게는 양옥이든 한옥이든 독립된 형태의 집만이 집다운 느낌을 줄 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꿈을 꾸었습니다.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 말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몰라도 아무튼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집을 짓고 살 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진 돈도 없이 그저 남의 집 담장을 기웃거리듯 여기 저기 기웃거렸습니다.

한참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특정 지역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활동의 근간이 서울에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경기도를 벗어난 지역을 선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남편이 하는 일이 다행히도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업이었기에 그나마 선택의 폭은 좀 더 넓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끈 지역은 '양지'와 '광주', '양평' 지역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은 나름대로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선 양지의 경우 일단 교통 조건이 좋았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강남까지 채 5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용인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면에서 유리했습니다.따라서 투자 가치를 고려해보더라도 객관적으로는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점들 때문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습니다. 편리한 교통은 다만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통산업에서 대단히 중요시되고 있는 물류 창고의 위치는 기본적으로 도로 조건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용인, 양지 인근에는 많은 물류센타며 각종 공장과 창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설들이 들어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양지의 자연환경을 보면 일단 산들이 그다지 높지 않고 접근하기가 용이했습니다. 제게 산이란 너무 높아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낮아서 산 같지 않아 오르고 싶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양지의 산들은 대체로 너무 낮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산소들이 산을 점해 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산에 있는 산소는 산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다만 전부여서는 안 되겠지요. 적어도 제가 본 지역은 그랬습니다.  

  양평의 경우 양지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교통조건은 상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자연 환경의 경우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일단 산들은 어느 정도 깊고 높아서 좋았습니다. 결국 투자 가치를 우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삶의 쾌적함을 우선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자식을 키우고 삶을 가꾸어 나갈 집에까지 투자의 개념을 앞세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서민들이 재산을 증식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이 바로 집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양평을 선택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터를 고르는 일이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터를 고를 때 많은 것들을 고려합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배산임수면 좋겠고 그 땅이 남향 이어야하며 그러면서도 땅값이 싸면 좋고 가까운 곳에 편의 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쩌면 호젓하게 마을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좋아할 지도 모르겠고....  완벽한 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아마도 땅값이 만만하지는 않겠지요.

  우리가 고려하고 싶었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산, 마을, 학교, 양지바른 땅, 정남향, 길,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 돈! 어디서 이런 욕심들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참!

신발만 신고 나서면 바로 산을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산 아래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도대체 그 마을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는 그런 마을이 아니라 마을로 접어드는 길이 있어 누가 들어서도 마을이 시작됨을 알 수 있는 그런 마을에 살고 싶었습니다.

땅값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산에 맞아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꼭 챙기고 싶었습니다. 나머지는 욕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욕심,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터를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터가 바로 우리의 바램을 채워준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평당 20~25만원을 주고 약 400여 평을 마련했습니다. 딱히 얼마면 적당하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나 다양한 가격의 땅이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땅이 가격 면에서도 적절한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시라는 겁니다. 일단 고려해야 할 것들을 모두 나열하고 그 중에서 우선으로 따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면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나머지는 채워지면 좋고 안 그래도 속상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리자는 것입니다.

  일단 터를 마련하면 자꾸 찾아가십시오. 자꾸 보면 정들고 정들면 살고 싶어지지 않겠어요?  

  다음엔 한옥문화원과 함께 집을 짓게 되기까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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