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433 추천 수 43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양평에 터를 마련하면서  빠른 시일에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저 짬만 나면 가서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하고  터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며 400여 평의 느낌을 가져 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땅을 한꺼번에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200여 평 그 다음에 70평 또 그 다음에 100여 평 이런 식으로 마련했습니다. 단번에 마련하지 못한 원인에는 금전적인 여건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아마도 이 땅에 대해 조금씩 커져 가는  욕심을 채우다 보니 그리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도시에서 100평하면 무지하게 넓어 보였는데 자연에서 그것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요?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간이 갈수록 이 땅에 어울리는 집을 짓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꽤 오랫동안 일본식 집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집을 떠올리면 그저 침침하고 어두웠던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옥 집, 그 다음에는 아파트.....  잠깐이라도 한옥에 살았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주변에 계신 나이 드신 어른들께 전해들은 한옥에 대한 인상은 그저 옹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할 수 없으면 모를까 일부러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일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한옥이 좋았습니다. 반드시 기와집을 상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서양 집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집들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을 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여튼 우리 터에 양옥을 짓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던 중 신문에 나온 문화 단신을 통해서 한옥 문화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이 뭔지도 모르면서 집을 짓겠다고 할 순 없었지요. 아니, 그전에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산에 의지 하려했는지 또 무턱대고 한옥이 좋다고 느끼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지난 일년 이 답답함은 다 풀렸습니다.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산을 의지해서 살아온 것을 알고 나 역시 한국인이니 어쩔 수 없었겠구나 이해했습니다. 한국사람이 분명하니 몸에 맞는 집을 짓고 사는 것 역시 당연한 일 이었고요.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한옥 중에서 어떤 모양의 집을 짓고 살 것이냐는 문제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옥을 짓는 것이 양옥을 짓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의 이런 고민을 읽고 계신 듯 귀틀집이나 흙집을 대안으로 제시 하셨습니다. 그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귀틀집이었지요.  원래부터 소나무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흙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었구요. 나무와 흙의 조화를 갖춘 귀틀집이야말로 우리가 꿈에 그리던 집이었습니다.  드디어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귀틀집을 지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귀틀집이나 흙집은 기와집보다 비용 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건축방법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어 볼만하다는 뜻이었지 아무렇게나 지어도 되는 막 집이라는 뜻은 정녕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치 짓기 쉽다는 것이 곧 집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구조, 기능, 편리성등) 까지도 가볍게 생각해도 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집은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그 재료와 공법이 다를 뿐이지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 쏟아야 할 정성과 노력은 하등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어찌 어찌 해서 우리의 집을 지어줄 사람을 만나긴 했습니다. 집은 그 분이 지어주겠지만 그 전에 설계도가 나오면 꼭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겐 집을 짓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설계도를 보여드렸지만 제게 돌아온 것은 산 자가 살집이 아니라는 말씀과 불같은 노여움 뿐 이었습니다.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 뿐 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왜 그렇게 급하냐구요. 많이 안타까우셨나봅니다. 급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면 더 공부하고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하시더군요. 한옥문화원에서 집 짓는 것을 도와주고 그 현장을 수강생들에게 실습 장으로 개방하면 어떻겠느냐구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기왕에 짓게 될 터인데 그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서 훗날 더 좋은 집을 짓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면 그 보다 더 신나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우리 집이 단순히 한 가족의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뛰어 넘어 사회적 기능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겠지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 번도 선생님이나 조희환 선생님이 우리 집을 지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분들이 하실 일은 따로 있고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의 살림집은 또 다른 사람들이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집이 선생님이나 한옥문화원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도 정말 괜찮은가, 또 선생님의 제안 때문에 졸지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집을 짓게 될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과연 우리가 이 집을 무사히 잘 지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집을 지어주실 많은 분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기보다는 궁국적으로 이 집의 건축주가 갖고 있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 저러한 이유들 때문에 집짓기가 축제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또 제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옥문화원과 함께 집을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깊은 감사와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과정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설계가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03131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6길 36, 905호 전화 : 02-741-7441 팩스 : 02-741-7451 이메일 : urihanok@hanmail.net, hanok@hanok.org
COPYRIGHT ⓒ2016 한옥문화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