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8.17 02:34

어찌 지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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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의 경복궁? (*^o^*)....(~-~)..... ... (^^;)...
                                                                                      
                      
잠시 머뭇하던 더위가 또 다시 기승을 부립니다. 연신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며 양평의 귀틀집을 그리워 해 봅니다. 그리고 함, 기대해 봅니다.  아마도 찜통 같은 더위는 이번 여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격지 않아도 되리라 하구요.  더위에 모두들 안녕하신지요?지난 주 드디어 지붕을 얹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무엇으로 지붕을 했는지 무척 궁금해 하실 것 같아 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지붕은 결국...... 기와로 하였습니다. 기와를 이고 앉아 있는 귀틀집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지나치게 되바라지지도 않고 적당히 조화로운게 단아한 멋이 있어 좋습니다. 특히 ㄱ자 집에 한쪽이 2층으로 지어진 집이라 지붕 처리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앞에서 보는 맛, 뒤에서 보는 재미, 또 산자락을 끼고 옆으로 조금 올라가 거의 지붕을 수평의 위치에서 가늠해 보는 즐거움이 꽤 쏠쏠합니다. 기와를 얹어 주신 분들도 연신 집이 아주 독특한 개성이 있어 보기가 즐겁다고 거드십니다. 모두 열 분이 꼬박 1주일을 달라 붙어 일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운이 좋았던게지요. 모두들 와공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라 여기 저기 불려다니느라 바쁘신 분들인데 마침 짬을 낼 수 있었답니다. 게다가 기와는 비가 오면 미끄러워 위험해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비도 올 듯 올 듯 하기만 했지 흐리기만 해서 오히려 순조롭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와를 마무리하던 마지막 날은 '기와상량'이란 것을 조촐하게 준비하였습니다. 비록 조촐하긴 하였으나 거기에는 그 동안 애써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제 대신 눈비를 다 맞을 기와가 든든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보다 기와가 이 집에 참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도 위안이 되었습니다. 무슨 위안이냐구요? 넘들은 돈이 없어 하고 싶어도 차마 그리 하지 못하는 기와로 지붕을 얹고도 뭐가 부족해서 그런 소릴 하느냐구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 집의 경우 기와를 얹은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집들도 그렇겠지만 집에 있어서 지붕을 어떤 모양과 재질로 만드느냐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언젠가 귀틀집을 하면 꼭 지붕은 '돌너와'( 흔히 '능애'라고도 하더군요)로 하고 싶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강원도 정선군 가수리나 평창에 있는 돌너와집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돌기와 지붕의 면과 선이 주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은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꼭 현대 추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아마 그 때 매료 됐나 봅니다. 저도 꼭 돌기와를 얹고 살고 싶었지요. 흔히는 참나무를 얇게 켜서 얹은 나무 너와지붕이 귀틀집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후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적으로 손을 봐줘야 할 것 같았고 오래 된 것은 색이 검게 변해 보기가 싫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나무 너와는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오로지 돌 너와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지붕의 재질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처마의 모양이 달라지니 어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분위기로 보아 어쩐지 돌 너와로는 지붕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돌너와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기와를 얹는 비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돈이 많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불리한 것은  건축비용이 이미 제가 예상한 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로 하면 어떻겠느냐구요. 그것이 무엇인지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선생님의 제안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지붕에 대해서만큼은 양보를 하지 않는 분이 선생님이셨습니다. 한옥문화원에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두 가지만은 당부하셨습니다. 첫째, 절대 집짓기를 서둘지 말 것, 둘째 다른 부분은 조금씩 형편에 맞게 절약하거나 변화를 주어도 좋지만 우리 한옥의 맛이 처마 곡선이나 지붕에서 가장 잘 드러나니 지붕만큼은 신경을 쓰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전체 예산 중에서 지붕에 대한 부분을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런 제안은 실은 많은 고심 끝에 내리신 결론이셨을 겁니다. 선생님은 문화원 창문 너머로 여기 저기 눈에 띄는 지붕들을 가리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썩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귀틀집이어서 그나마 좀 나을 거야. 건축주의 부담이 너무 커지면 안되잖아." 어찌 제가 선생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선생님이나 저나 아쉬움이 많이 남은 결정이었습니다.

어째든 그렇게 지붕은 싱글로 결정이 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사방에 집들이 이고 있는 지붕이란 웬만하면 싱글이란 걸 알았습니다. 드디어 터 파기가 시작되고 나무들이 들어오고 하는데 쌓이는 나무의 높이 만큼 제 고민도 함께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스팔트 싱글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복에 보기에도 민망한 서양모자라니요. 맞지 않는 결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늦어 후회하기 전에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조희환 선생님께도 신영훈 선생님께도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도저히 싱글은 하고 싶지 않다구요. 지붕에 대해서 좀더 시간을 갖고 고민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두분 모두 다만 걱정하고 계신 것은 건축주의 주머니 사정인 것 같았습니다. 지붕을 다시 고민하겠다는 것은 추가 비용부담에 대한 용의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붕만은 다시 생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정말 여러 분들이 오랫동안 지붕에 대해서 내일처럼 고민해 주셨습니다. 비용이 문제이지 싱글이 이 집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이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저대로 돌너와를 계속 수소문해 보았지만 신통한 소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집이란 그 것이 위치한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기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달한다는 것이지요. 즉 돌 너와의 경우 그것이 목격되는 지역을 살펴보면 됩니다. 주로 강원도 산골이나 해발이 높은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런 곳은 일교차는 그리 크지 않고 바람을 많이 타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있는 집들은 돌의 성질을 이용한 지붕을 발달시켰습니다. 돌이 한번 달궈지면 쉬 식지 않는 성질과 무겁다는 점 말입니다. 한 여름에도 낮 기온이 그리 크게 오르지 않는 서늘한 지역에서는 돌기와를 얹어도 무리가 없고 무거우니 날라 갈 염려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중부나 그 이남 지역의 평지와 같은 곳에서 여름철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후딱 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달궈진 돌의 온도는 그 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그것이 식으려면
한참이 걸리는 것을 안다면 양평집에 돌너와를 얹었을 경우 여름에는 돌에서 나오는 복사열 때문에 한밤중에도 실내가 열대야를 방불케 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럴 경우 끝내 돌너와를 얹고 싶다면 밑에 흙을 두껍게 발라줘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더울거라는군요. 이미 제 마음은 돌너와를 단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러는동안  목수선생님께서는 기와를 만드는 재료로 너와를 제작해서 얹어보면 어떨까를 제안하셨습니다. 그 제안에는 사실 여러분들이 공감을 표시하셨지요. 하지만 사실 모양만 너와일 뿐이지 그 제작비용이나 시공비에서는 기와집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기와로 지붕을 할 경우 저희 집에 드는 비용이 약 5천만원이라고 하십니다. 엄청난 비용이지요. 싱글로 지붕을 할 경우에는 약 2천 5백에서 3천 만원을 예상하셨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만일 '오지 너와'로 지붕을 할 경우 추가로 부담할 비용이 1000여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오지 너와를 얹어 볼 만하였지요. 하지만 기와와 같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면 좀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껏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오지너와를 실험적으로 시도 할텐데 그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지붕을 전면적으로 그것으로 하기엔 사실 부담스럽고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별채와 같은 조그만 규모의 지붕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전부를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 집의 지붕은 기와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그곳에 우뚝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집을 가리켜 '양평의 경복궁'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제게 말을 건냅니다. 아마도 집이 그만큼 격이 있다는 소리로 하신 말씀이겠지요.  제가 바란 것은 경복궁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이면 그런거겠지요.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신영훈 선생님도 지붕이 참 멋있다고 덕담을 해 주시지만 선생님의 아쉬움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조희환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아쉬움이 남으신답니다. 처음부터 기와로 지붕을 한다고 했으면 서까래를 좀더 길게 뺄 수 있도록 준비했을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정말 치밀한 분이셨습니다. 처음부터 싱글은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아예 서까래를 전천후로 준비하셨더군요. 그 위에 어떤 형태의 지붕을 얹어도 무방한  최소한의 길이로 서까래를 확보하셨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이지요.아무튼 지금의 기와지붕은 정말 아름답고 잘 어울려  저는 그 것만으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못 해본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요? 아니면 21세기 살림집으로서 지붕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요? 그 지붕을 쳐다보면서 이런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만일...."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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