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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역사문화대학 답사
• 류큐왕국 기와등 고려흔적 즐비
• 가면 안가마 는 안동 하회탈과 유사해


"나하시(오키나와)=김한수기자" 오키나와. 고려시대이후 한반도와 긴밀한 유대를 유지해온 류큐(류구)왕국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와 관련 있는 국내외 역사현장에서 진행되는 조선일보 역사문화대학 제20기 단원 2백여 명은 24~27일 오키나와를 답사했다. 탐방단의 관심을 모은 곳은 류큐왕국의 왕궁이 있었던 수리성(수리성). 이곳에서 다량 출토된 계유년고려와장조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기술자가 만들었다는 뜻)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를 보면서 오키나와에 남아있는 우리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리성 정전(정전) 앞뜰에서 있은 강의에서 신영훈 문화재전문위원(건축사)은 "이들 기와는 류큐왕이 고려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는 고려사의 기록과 함께 고려 때부터 양국 간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탐방단은 수리성에 전시된 역대 류큐왕의 초상화에서도 우리 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8대 상풍왕까지는 초상화 얼굴 뒤편 배경이 해와 달을 그린 병풍이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임금 초상화에 빠지지 않는 일월오악도의 영향. 우리가 산봉우리를 그린데 비해 바다로 둘러싸인 류큐왕조는 오악대신 파도로 대치시킨 것이 차이점이었다. 상풍왕이 임란후인 1640년까지 왕위에 있었던 사실은 한-오키나와 관계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사실이다.

신위원은 "초상화의 배경에 나타나는 장지문, 신하들의 관복까지도 조선 것과 똑같다"면서 류큐왕국이 일본에 정벌당하기 전까지 우리기록에 나타나는 내용을 설명했다.

"세종은 류큐왕국의 조선술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기술자를 초빙, 배를 제작케해 그 장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세조때는 류큐왕의 간청에 따라 조선에서 배 2척분량의 대장경을 보내주었고, 이를 받은 류큐왕은 왕궁 앞 연못에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장경각)을 지었습니다. 이런 기록은 무수히 나옵니다. "

탐방단은 굳이 이런 사료가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한반도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키나와의 민속촌이라 할 류구촌 입구에 전시된 즈나히키라는 줄다리기때 사용하는 줄은 우리의 고싸움 줄과 모양이 똑같았으며, 박물관에는 제주도 여인들이 쓰는 허벅, 똬리 같은 기구들이 즐비했다. 또 안가마 라는 가면은 우리 하회탈과 너무나 흡사해 탐방단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류큐대학의 진파교수(사회학)는 이렇게 말했다. "오키나와의 민속에는 한반도, 특히 제주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오키나와에는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우는 풍습이 있습니다.
일본 본토와는 별도로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

                                                                         발행일 : 1994.03.29  기고자 :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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