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총위의 목탑(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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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훈 문화재전문위원 (일사일언)  

내딴엔 다소 부끄럼도 있고해서 반만 웃으며 물었더니 "장군총위에 침전이 있었다"고 단숨에 간단히 대답한다. 집안박물관의 젊은 직원은 다 아는 상식을 무엇 새삼 묻느냐는 투다. 아차, 이것봐라 상식이라니. 나는 여직 모르고 있었는데, 뒤통수가 간지러워진다. 왜 헤벌어진 입에서 피식한 웃음이 나온단 말인고. 남은 다 아는데 정작 알아야할 나는 모르고 있었다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런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누.

고구려 수도이던 집안에 처음 다녀와서 장군총 일곱단 거석고단 위에 목탑이 있었던 듯 하다며 멕시코의 석단위 신전을 예로 들기도 하였지만 자네 보다 식견이 뛰어난 선생님들 글에도 없는 무슨 소리냐고 핀잔만 잔뜩 듣고 말았었다.

세번째 갔을 때도 첫번째처럼 돌틈에서 기와조각을 보았다. 장군총을 최초로 조사한 일본인들은 무수한 기와편과 함께 전편도 있더라고 하였다. 또 일곱단 마지막 가장자리 장대석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둥글게 판 깊은 홈구멍이 있다. 돌난간 자리이다. 이것만으로도 목조건물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나는 압록강 상류 혜산진 맞은편 탑전에서 발해 5층탑을 보았다. 무덤 위에 서있는 완고한 전탑이다. 고구려 제도를 계승한 증좌를 함축한 귀중한 사례이다. 장군총 위 목조건물은 다층탑이었다.

천축의 불탑과 방불한 구성이다. 도대체 어느때 불법이 전래되었기에 이런 구축물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인가. 나는 도무지 알기 어렵다.

지난 여름 동행한 윤명철박사가 집안현지 를 읽다가 장군총이 동명성왕릉 이라 해설한 귀절을 찾아냈다. 아고메여 아지못게라. 이건 또 어쩌자는 소리가 되는고.

                                                                                   발행일 : 1994.09.11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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