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사자의 인격(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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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지않고 이기는 한국의 사자(우리문화이웃문화 1) 순진    무구한 달통의 경지 중-일과 대조적
• 중국
• 험상궂고 표독 크기에 비해 빈약
• 일본
• 사자 대신 고구려 개 가 수호동물
• 불교적 인격부여 토속미 물씬 한국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구촌은 세계화-국제화의 물결에 휩쓸려 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허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의 소멸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문화의 자유로운 융합을 뜻한다. 세계화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주변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창간 75주년을 기념, 우리문화와 세계문화를 쉽게 비교해보는 우리문화 이웃문화 를 기획, 주간 연재한다. 88년부터 조선일보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 94년 아! 고구려 집안탐험 에 사전 답사와 강사로 참여해온 신영훈 문화재전문위원과 사진작가 김대벽씨가 본사 서희건부국장과 공동기획, 7년여동안 유라시아(아구)대륙을 무대로 한-중-일 문화와의 특성과 관련성을 추적, 정리한 이 시리즈는 독자 여러분들을 새로운 시야의 문화 세계로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돌조각에도 인격을 부여한다. 그래서 동-서의 돌조각이 다르다. 한-중-일의 조각도 다르다. 만든 사람들이 다른 까닭이다. 지난 여름 압록강에 가서 고구려의 옛 서울 집안의 여러 유적지를 순례했다.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문화 대사업 아! 고구려 탐험 이었다. 필자도 사전 답사와 강사로 한몫 끼었었다. 탐험단을 두 패로 나누었다. 백두산에 들렀다 집안에 도착하는 패와, 집안을 먼저 보고 백두산으로 향하는 패로 갈라졌다.

두 패는 돌아오는 길에 북경에 들러 자금성과 이화원(신화원) 등을 보았다. 규모가 크다고 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장대한 구조물이 건축적으로 다 우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하나씩 지적해 가면서 설명했다. 규모 때문에 위축되었던 선입관이 해소되면서 비로소 객관적인 관찰을 하게 되었고, 크기에 비해 건축적인 내용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서 다들 의기가 양양하였다. 자금성에는 여러 조각품도 있다.

그중 내전(왕의 일가가 숙식하는 처소)으로 들어서는 문앞에 황금 사자 한쌍이 앉아 있다. 수놈은 앞발로 공을 다루고, 암놈은 발랑 자빠져 네 발을 허둥거리는 새끼의 배를 한쪽 발로 누르고 있다. 그 형상이 험상궂고 표독스러울 뿐 아니라 당장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폼으로 보이는데 저들은 새끼와 더불어 놀고 있는 자애스러운 모습이라고 찬탄한다. 함께 바라보다가 우리 경복궁 광화문 앞의 해태 모습을 상기해 보라고 주문하였다. 그 어리숙한 모양이 떠오른 분들은 입가에 넌지시 웃음을 머금는다. 너무나 대조적이다.

꼭 긴장하고 표독스럽게 굴어야 상대를 굴복시킨다면 그것은 하지하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면 도통해서 순진무구한 최상의 경지에 들어선 경복궁 해태가 한 수 위라고 해야 마땅하다.

사자가 궁둥이를 땅에 대고 앉는 것은 불교 영향이다. 불교의 윤회설에서 불성이 있는 동물은 비록 미물일지라도 장차 인도(사람)로 환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양의 사자들이 맹수의 권위로 신전수호의 서수가 된 것과 성격이 다르다. 걷거나 달리거나 포효하는 형상이 그대로 채택된 것에 비하면 불교적인 사자는 다분히 인격이 부여된 형용이다.

당나라 제3대 고종(628~683)과 유명한 그의 황후 즉천무후(624~705)가 함께 묻힌 건능(건릉 서안의 서북 약70㎞ 량산)의 주작문 앞에 앉아 있는 돌사자도 궁둥이를 깔고 앉은 인격이 부여된 형상이다. 높이 4.5m나 되는 거대한 돌사자다. 덩치는 큰데 아직 순화가 덜되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하고 있다. 아직 최상의 수준에 달통하지 못하였나 보다.

비슷한 시기의 신라 사람들이 조성한 돌사자가 경주 괘릉에 있다. 앞발로 발장구 치며 노래라도 하듯 환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격을 부여한 표상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면 최상의 수준에 있다고 할만하다. 흔히 중국문화가 월등하여서 우리나라는 그것을 본떴다고들 말한다. 우리 상식이 그렇다. 36년간 식민지 정책을 수행하면서 일본인들이 우리 귓가에서 수군거리던 소리가 아직도 상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듯 정말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그렇게 닮았는지 이제 한번 점검해 볼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는 사실에 동의하려면 우리를 설득할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비교하면서 객관적인 평가를 냉정하게 해봐야 된다. 결론은 그 후에 내려도 족할 것이다.

불교에 동반한 돌사자는 일본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대신 초기 일본불교를 주도한 고구려 스님들에 의하여 고구려 개 (박견 맥견)가 수호 동물로 채택되었다. 고구려의 영특한 개가 수문장이 된 것이다. 심지어 2차대전때 군국주의자들이 표상으로 삼았던 신사(정국신사)도 고구려 개 를 채택하고 있다. 고구려 개 의 끈질긴 문화영향력을 읽을 수 있다.

대체로 우리와 중국, 일본의 문화는 이런 기반에서 조성되고 연관되고 관계되며 전개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 증거는 여러 분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발행일 : 1995.03.07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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