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6(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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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과학(역사 남과 북 12)
• 남북 '장군총강조' 고분서술 일치
  
문제제기 건축분야에서 남-북한교과서가 공통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은 고분이다. 남한은 고구려의 고분에 대해 석총과 토총으로 구분하고, 석총의 대표적 작품으로 장군총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장군총은) 계단식으로 화강암을 7층으로 쌓아올렸다. 맨아래층은 길이가 약 30m이고, 높이는 약 13m이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각 층의 넓이와 높이를 줄여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남한 고교 국사 상권73쪽). 토총으로는 강서고분을 대표작으로 들고, 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굴식돌방이 있는 것 이라고 구조도 가르친다.

북한은 고구려의 무덤들인 평양시 력포구역에 있는 동명왕릉,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는 고국원왕릉(안악3호무덤),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강서 세 무덤, 집안에 있는 장군무덤이 그 대표적인 것 (북한 조선력사 상권87쪽)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무덤들은 세밀한 계산과 설계에 의하여 나무를 깎듯이 돌을 잘 다듬어서 기둥과 벽체를 세웠으며, 천정까지 하였다. 그리고 무덤벽에는 그림까지 그렸다"면서 "특히 고국원왕릉은 여러 개의 방으로 되어있는데, 점차 좁혀가면서 돌을 맞물려 하나의 빈틈도 없이 쌓아올린 천정은 이 시기 높은 건축술을 보여준다"(북한 조선력사 상권88쪽)고 서술하고 있다.

북한은 또 전통건축술의 우수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건물의 지붕은 비물이 흘러내리기 좋은 곡선을 이루게 하고, 처마는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추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우로 쳐들려 방안이 해빛을 잘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기둥은 보기 좋고 안전한 감이 나도록 배가 좀 부르게 만들었다"(북한 조선력사 상권87쪽).

그러나 남-북한은 고분을 제외한 나머지 미술분야와 과학-의학분야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삼국시대의 모든 미술분야를 다루는 데 있어서 무조건 고구려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 전설로 남은것들이 교과서에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다.

그 한 예로 북한은 광개토대왕때인 392년에 지어졌다가 6 25때 소실돼 복구했다는 평양 대성산의 광법사를 대표적 절간 으로 들고, 탑은 평양시 력포구역 동명왕릉앞에 있었던 정릉사 8각탑을, 다리는 지금은 극히 일부분만 남았다고 스스로 밝힌 평양 대동강의 고구려나무다리를 각각 대표적 유물로 들고 있다. 첨성대도 7세기전반 고구려가 평양성안의 못가에 건설했었다는 첨성대를 경주첨성대보다 먼저 등장시키고 있다.

북한은 과학분야서술에서 남한에서는 다루지 않는 이른바 고구려의 천문도 를 매우 소상히 다루고 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이러한 천문관측성과에 기초하여 훌륭한 천문도를 만들었다. 이 천문도는 그후 14세기말까지 전해져서 새 천문도를 만드는 대본으로 되였다. 거기에는 1,464개의 별들과 은하수를 커다란 원안에 표식하였다. 이 천문도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가운데 세계에서 제일 오랜것의 하나로서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천문기술을 보여준다"(북한 조선력사 상권83쪽).

                                                                       발행일 : 1995.05.24  기고자 : 신형식 서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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