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다각탑 "우리문화 이웃문화 17"(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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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일에 전파된 해동피해 방지공법
• 지반침하시 사각형 보다 변형-파손될돼
• 송-명-청시대 6각탑 일 법륭사 8각 전각
• 백제 9각건물지 신라 흥륜사 8각목탑 등
•  동토의 지혜 전한 흔적 상당수

금년으로 두번째 중국의 심양지역에 가서 석불사의 탑을 보았다. 심양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50㎞쯤 가면 석불사로 불리던 절터가 있다.

절터는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데 평원에서 우뚝 솟아오른 독산이 있고 그 위에 석불사 탑이 있다.

고구려 탑이라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호칭하고 있다. 탑에서 돌아오는 길의 큰길가 마을에 들러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한결같이 그 쪽을 손짓하며 고구려 탑이라 하였다.

전에 왔을 때는 막연히 8각형의 벽돌로 쌓은 고구려 탑이라고만 알았다. 금년에는 동행한 분들의 정밀 조사가 있었다.

성균관대 건축과 교수이며 북경의 청화 대학 건축과 교환교수로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상해 선생과 문화재 보수 시공을 30여년간 계속하여 온 김영일 건축기사도 조사에 참여하였다.

탑은 다 깨어지고 1층과 하부 기단 일부만이 남아 있는 형편이어서 완형을 다 볼 수는 없었다. 전으로 쌓은 탑이다. 말하자면 회색빛의 벽돌로 축조한 다층탑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얼마나 그 자리에 있을 지 걱정스럽다. 깨어지다 남은 부분의 모서리에서 120도의 각도를 검증하였다. 육각(여섯 모)으로 쌓은 탑이라는 판단이다.

육각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다시 검증하기를 요구하면서 혹시나 칠릉(일곱 모)은 아닌지 살펴봐 달라 하였다.

삼국사기 에 이런 기록이 있다. 고주몽의 유복자 유리가 아버지가 숨겨둔 신표를 찾아내었다. 일곱모 난 주춧돌 위에 세운 소나무 기둥 사이에서 칼의 한 조각을 찾아내었다. 신표를 확인한 고주몽이 태자로 삼고 등극하게 하니 그가 바로 유리명왕(유리명왕) 이라는 내용이다.

일곱모 난 주춧돌이 내게는 큰 과제가 되었다. 일곱모는 여섯모나 여덟모에 비하여 작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한 때는 도면 그리기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어서 아마 삼국사기 가 육이나 팔을 칠릉으로 잘못 쓴거나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후에 작도가 가능하다는 점과 작도법도 익히게 되어서 의문은 가셨지만 실제로 일곱모 난 주춧돌이 고구려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해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행여나 일곱모 난 탑이 아닌가 해서 재조사 하였으나 그 탑은 육각탑이었다.

육각의 탑은 중국에도 상당수 현존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12세기의 송나라 때의 작품이거나 명-청대의 전탑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48기의 중국의 탑자료중에 47기는 대략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중의 하나. 호북 마성백자탑만이 780년에 만들어졌다 한다.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하였으니 석불사탑이 그때 만들어졌다 해도 호북탑보다 1세기를 앞서고 있다.

마성백자탑은 송나라 때 다시 쌓았다. 다시 쌓으면서 육모로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육모의 건축은 고구려 이래로 지속되어 조선조에서는 서울의 동궐(창덕-창경궁) 후원에 작은 육모정으로 구성된다.

고구려에는 다각탑이 많았다. 팔각도 그중의 하나이다. 백제에서도 다각의 건물을 지었다. 한강변의 이성산성에서는 한양대가 발굴한 터전에서 9각 건물지가 나왔다.

신라 서라벌의 첫번째 본격적인 사원인 흥륜사 목탑은 8각탑이었다.

삼국의 문물로 배양된 토양에서 발아한 왜국의 사원에서도 8각의 건물이 보인다. 법륭사 일곽에 따로 건축되어 있는 성덕태자(성덕태자)의 몽전(유메덴)도 팔각의 단층전이다.

다각형 건물은 무섭게 추운 지방에서 시작되었었다고 나는 주장하려한다.

바이칼호 인근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동토지역의 집들 중에 목조건물이라도 직사각형 평면의 대형건물들은 대부분 어그러져 있다. 그에 비하여 유르트(yurt) 등 유목민족의 살림집들은 평면이 다각형이거나 몽고포(몽고빠워)처럼 원형 평면이어서 심한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원리가 추운 고구려에서 적용되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동토의 땅도 땅속은 포근하다. 지표아래 1~2m 깊이의 땅은 해동되어 있는 것이다. 지표위의 땅은 여름, 가을까지 녹아 있다가 추워지면 다시 언다.

고구려의 지독한 겨울 추위도 땅 속 상당한 깊이까지 동결시켰을 것이다. 동결되었던 땅이 녹으면 침하가 생겨난다. 이때 지상건물들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자연의 섭리를 잘 활용해서 의연히 버틸 수 있는 유형이 다각형 평면의 건축물이다.

고구려의 육각, 팔각은 그래서 크게 발전하였던 것이고 그 경험이 이웃나라에 전파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후대에 맥이 이어졌던 것이라고 해석하려는 것이다.

목조건축에서 6각, 8각, 9각은 그 작법이 까다롭다. 이들에 비하면 북경의 천단에서 보는 바와 같은 둥근 평면의 원형건물은 차라리 짓기가 쉽다.

둥글게 돌아가는 부분은 직선의 재목 여럿으로 짜맞추어 합성하면 완성되는 것이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천단의 건물들에서는 합성된 부분을 가리기 위하여 헝겊으로 싸바르고 색을 칠하였다. 그에 비하면 6각, 9각은 참으로 기둥 위에 짜기가 어렵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잘 짠 다각을 보면 우리는 신공이라 찬탄한다.

벽돌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고구려 석불사 6각탑은 그래서 고구려인들의 창의가 돋보이는 귀한 작품이라 칭찬해서 조금도 더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글=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7.04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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