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무늬"우리문화 이웃문화 36"(조선일보)

by 운영자 posted Jul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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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중동 등 유라시아 전성분포
• 유럽선 청동기때 발달 "행복의 상징"
• 고구려 고분벽화-경복궁 꽃담에도 표현

우리문화 이웃문화 사이에는 서로 다른 특징도 있지만 성정이 같은 것도 적지 않다. 더러는 거의 범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는 예도 있다. 태극무늬도 그런 유형에 속한다.

서역의 여러 건축에서 태극무늬를 볼 수 있었다. 중동건축의 특성이 농후한 이슬람사원에서 벽체나 천장에 무늬 놓은 것을 살피게 된다.

같은 무늬가 금나라때 세웠다는 임제사 징령탑 난간에도 있고, 후대에 조성된 북경 신화원 난간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자료가 상당히 현존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회랑 서쪽끝에도 있는가 해서 지중해연안을 살폈다. 그리스와 로마에도 있었고, 로마가 진출하였던 남불(provence)에서도 볼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지중해에서 프랑스 내륙으로 열린 강을 거슬러올라가 요긴한 고장에 거점을 마련한다. 아비뇽(avignon)도 그 중의 하나이다. 지난번 지중해연안답사때 여기를 미처 들르지 못하여 며칠 전에 다시 가보고 왔다. 아비뇽에서 서남방으로 한동안 가면, 고대도시 님므(nimes)가 나온다.

로마시대 원형투기장과 서력기원전 1세기말엽에 아폴로신전을 본떠 지었다는 메종 카레(maison carre)가 있었다. 비교적 상태가 좋아 당초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건물의 처마에도 예의 무늬가 연속 양각되어 있다.

①형인데, 이는 한번 손을 대면 끝이 없다는 무시무종 무늬에 해당한다. 연속되는 직선이 교차하는 부분에서 卍형이 형성되었다.

67년도 덴마크국립박물관에 한국실을 개설할 때 백악산방 이라는 사랑방을 내가 가서 지었다. 갖고 간 쇠장석에 투각한 卍자형무늬를 보면서 유럽에만 있는 줄 알았던 것이 한국에도 있느냐고 오히려 그들이 놀라워하였다.

그 후로도 관심있게 보았는데, 역대의 예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독일 베를린의 스타트리체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티안(parthian palace)의 모형에서도 ②형을 볼 수 있고, 이탈리아의 라벤나(ravenna)에서 425~433년에 건설한갈라 푸라시디아(gallaplai-dia)무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유형은 고대로부터 존재하여 기원전 유례도 남겼다. 그중 하나가 bc360~320년경에 조영된 그리스 에피다오로스(epidaurog)에 있는 지하납골당(tholos)에 채택되어 있는 ③형무늬이다.

이들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절의 표시라 하면서 만 자라 부르는 형과 이를 뒤집어 반쯤 일으켜 세운듯한 2차대전때 히틀러가 채택하였던 하켄쿠르즈(hakenk-reuz)와 두 가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서구에서는 이 무늬가 청동기시대로부터 발전하였으며,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는 불교적인 만 자로, 또 하나는 히틀러의 것으로 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구분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런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표지를 눌러 찍던 능화판의 무늬에서도 계속 연속시키면서 바로도 쓰고 외로도 썼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를 보게 된다.

이 유형을 태극무늬로 보자는 주장이다. 하늘과 인간과 땅을 각각 공자형으로 도시한다.

천부경에도 이런 의미가 담겼다. 공자형이 정체된 채 가만히 있으면 탈이 없는데, 정체가 지극하면 동작이 일어나기 시작한다(정극동).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던 인간이 하늘을 치받고 땅을 뚫는다. 교합이 생긴다.

로 교합하면 이는 즉시 로 나뉘어지면서 핵을 이루는데, 곧 로 둥근 원이 둘러 싼다.

그런 상태에서 운행이 계속된다. 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도1이 된다. 돌기 시작하였다.

도2의 단계이다. 이런 기운을 바탕에 두고 무늬를 형성한 것이 백제인들이 벽돌에 장식한 화훼무늬다. 도2처럼 돌고 있는 동작을 일순에 멈추게 하면 이론상의 도3과 같은 형상이 된다.

다시 돌기 시작한다. 점점 회전이 빨라진다.

도4의 단계가 된다. 역시 백제인들이 이 운동을 포착하여 방전의 무늬를 삼았다. 극락조가 기운을 쓰는 형상인데 유명한 산경문전과 함께 절터에서 출토한 작품이다.

도4의 형상을 조선시대엔 각 전각층계 소맷돌에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우리는 흔히 삼태극이라 부른다. 여름의 부채나 대문 혹은 북에 색색으로 그려넣기도 한다. 더 빨리 돌면 도5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태극의 무늬이다.

최고의 속도로 돈다.

도는 일도 극에 달하면 멈출 수밖에 없다(동극정). 도6의 형상이 된다. 대한제국시절에 문서마다 머리에 인쇄하던 무늬가 이것이다.

이들을 통틀어 나는 태극무늬라 부르고 있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 괘를 그린 태극도를 본 적이 있다. 조선일보의 아! 고구려 전을 준비하던 분들에게서도 그 그림을 확인하였었다.

벽화의 아주 작은 부분에 겸손하게 그렸다. 5세기경의 작품이라 한다.

이것을 보면서 혹은 고구려 이전의 옛적부터 또는 고구려이래로 태극에 연관된 철학적인 이론이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행히 나는 아직 그 이론을 배우지 못하였다. 아쉬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배울 수 있는 길에 나서야겠다.

우선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탐색하기를 은근히 바란다.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6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