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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신사지키는 고마이누는 고려견(우리문화이웃문화 2)  
  무령왕릉 석수처럼 머리에 뿔
• 동경 야스쿠니 신사에도 보여

크게 법석댔다. 20여년 전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능이 발굴되었을 때였다(1971년). 이 소식이 온통 장안의 화제였다. 광복이후 최대의 발굴성과라 했다. 백제왕릉에서 부장품이 이만큼 구비된 채로 발견된 바 없었다. 그래서 학문적으로도 큰 성과를 얻었다고 했다. 더구나 묘지명이 나와서 지권의 풍습과 함께 왕과 왕비의 능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어 더욱 뛰어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발굴에 참여하였던 분들은 여러가지 신비한 현상을 두고 지금도 불가사의라고 한다. 왕릉 앞을 막았던 부분의 일부를 헐자 흰 기운이 새어나오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백제 금속예술의 수준을 알려주는 금관이나 금귀고리장식 등은 각각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국보 제162호가 된 석수는 돌을 다듬어 만든 뿔 하나 달린 짐승(일각수) 이다. 높이 30㎝, 길이 47.3㎝의 이 돌짐승은 신격화된 형상인데 원만상으로 표현한 개를 닮았다. 조선시대의 민화속에 등장하는 신구를 닮았다.

무령왕릉의 이 짐승은 쇠붙이로 뿔을 따로 만들어 꽂았다. 중국 서수들의 기능을 위주로 힘찬 모습을 강조한 소나 사슴 뿔과는 다르다. 우리의 뿔은 마치 서기 한가닥이 나부끼는 듯한 유현한 형태이다.

개가 뿔을 달았다니 세상에 그럴 수도 있느냐는 의문이 일어난다. 일본에 가면 뿔달린 개가 있다. 일본인들이 고마이누 라 부르는 고구려 개 이다. 고려견, 박견이라고 쓴다. 돌로 새긴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이 내량시(나라시) 동대사(도다이지) 남대문에 떡 버티고 있는 고마이누 이다. 비슷한 것의 예가 경도(교토) 청수사(기오미즈데라) 문 앞에도 있다.

일본 신사 문앞의 돌짐승은 언뜻 사자처럼 보여도 그 이름은 다 고마이누 이다. 심지어 2차대전 때 군국주의 골수분자들이 일만 있으면 찾아가던 동경(도쿄)의 정국신사(야스쿠니진자)에도 여러 마리의 고마이누 가 있다. 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하듯이 그들의 기반은 고마이누 가 장악하고 있는 신기의 테두리에서 끝내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수 있다. 일본은 아주 재미있는 열도다. 우리 역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이다. 663년 백제부흥에 실패한 세력들이 왜열도 구주(규슈) 대재부(다자이후)에서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에 새로운 근거지 마련을 위하여 근강(오미) 일대에 새로운 도성건설을 시도한다. 근강 인근에는 백제 사찰이 수없이 경영되었었고 현재에도 호동삼사로 일컫는 백제사가 금강륜사, 서명사와 함께 향화를 받들고 있다.

이 백제사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전신사(다케다진자)가 있다. 이 신사에 18세기 스님이 옛 것을 본떠 목각하였다는 목조 고마이누(목조 박견)가 있다. 좌우에 두마리가 앉았는데 그중 한마리 머리에 뿔 하나가 솟았다. 고구려와 백제문화권내에서 뿔 하나 달린 서수 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좌우에 앉은 두마리 고마이누 중에 한가닥 뿔을 표징하고 있는 예는 동대사 경내에 있는 신사(팔번궁)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신사에서 종사하는 분에게 물으니 16세기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개의 머리에 뿔이 날 수 있다는 사례들을 찾게 된 것이다. 단지 그런 개는 사령(사자 개 닭 해태)중의 하나로 신격화 되었을 때 비로소 뿔이라는 신장을 갖추게 된다. 조선시대 민화의 개에 뿔이 있는 점에서 그런 증좌를 찾을 수 있다. 고마이누 가 뿔을 지니기 시작한 흐름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면 무령왕릉의 석수도 그 반열에 끼는 놀라운 작품의 하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구려에서도 개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았다고 보인다. 중요한 인물이 기거하는 저승의 세계를 개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신장상과 함께 고분벽화에 개를 그린 것에서 그런 사례를 또 볼 수 있다. 개가 신장과 함께 신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문화는 넓은 지역에서 끈질기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문화가 아직 생명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문화는 중국의 한족문화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도 확연하게 눈에 뜨인다. 한족문화권에서는 개를 신구로 삼지 않았다. 이 점도 서로 다른 문화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글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

                                                                                  발행일 : 1995.03.14  기고자 :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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